
사진: 399scout · ImjingakPrayer.jpg · CC BY-SA 4.0
2024년 2월 17일 서울.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가 해산 총회를 열었다. 북한이 대남 기구를 정리하면서 범민련 북측본부도 사라진 뒤였다.[1] 당시 사무처장이던 원진욱 씨는 통일뉴스에 쓴 글에서 해산 이유를 남북관계가 "적대적인 두 개의 교전국가 관계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북측본부가 정리되면서 범민련 운동은 "그 존재 근거를 잃게 되었다"고도 했다. 새 방향은 "통일에서 자주와 변혁으로의 활동전환"이었다.[2]
범민련은 1990년 남과 북, 해외의 통일운동 세력이 함께 만든 조직이다. 남측본부는 대법원이 1997년 이적단체로 판단한 뒤에도 '민족공조'와 연방제 통일을 내걸고 활동을 이어 왔다.[2][3] 그 조직이 문을 닫게 된 계기는 남쪽의 수사나 여론이 아니었다. 평양의 결정이었다.
한 세대 동안 한국 좌파의 한 흐름을 움직인 '민족'과 '통일'의 언어가 퇴장하고 있다. NEXT는 이 퇴장의 과정을 세 편에 걸쳐 짚는다. 첫 편은 가장 먼저 민족을 버린 쪽이 어디였는지에서 시작한다.
◇민족 좌파는 무엇을 믿었나
1980년대 중반 운동권은 한국 사회의 성격을 두고 크게 둘로 갈라졌다. 민족해방(NL) 계열은 한국을 미국에 종속된 사회로 보고 반미 자주와 민족 통일을 첫 과제로 삼았다. 민중민주(PD) 계열은 계급 문제를 앞에 뒀다.[4] 1986년 서울대 지하조직 구국학생연맹과 공개 기구 자민투가 반미자주화를 내걸었고, 그해 4월 김세진·이재호가 "반전 반핵 양키 고홈"을 외치며 분신했다.[5] 같은 무렵 김영환이 '강철'이라는 필명으로 쓴 문건이 대학가에 퍼지며 NL 안에서도 북한의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받아들인 이른바 주사파가 세를 얻었다.[6] 김영환은 1990년대 말 전향해 북한 인권운동가가 됐다.
NL은 1990년대 중반까지 학생운동의 주류였다. 1995년 총학생회 선거에서 NL 계열이 94개 대학을 장악했다는 보도가 있다.[7] 학생운동 시절 주체사상을 따르지 않는 NL이었다고 밝힌 하태경 전 의원은 "'전대협 주류 세력이 주사파였다'는 표현은 맞지만, 그렇다고 전대협 출신들이 현재도 모두 주사파라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8] 2000년대에는 진보정당 안에서 NL 계열이 힘을 키웠고, 헌법재판소는 2014년 통합진보당을 해산하면서 경기동부연합 등 '주도세력'의 존재를 인정했다.[9]
다만 이 세계관이 힘을 가졌던 무대는 학생운동과 통일운동 단체, 일부 진보정당이었다. 한국 사회 전체는 아니었다. 2005년 한국일보·요미우리 공동조사에서 64.3%는 북한을 최대 군사 위협으로 꼽았다.[10] 주사파의 규모를 두고도 말이 엇갈린다. 1994년 박홍 당시 서강대 총장은 1987년부터 주체사상에 심취했던 학생 1만2천~1만5천여 명이 대학을 졸업했다고 주장했다.[11] 김영환은 가장 많을 때 10만 명쯤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12] 그러면서도 그는 2006년 "0.5%도 안 되는 친북 주사파 때문에 386 전체를 빨갱이로 몰아세우는 것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13] 운동권 출신, 86세대, NL, 주사파는 서로 다른 말이다. 이 특집이 다루는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민족공조'와 '통일'을 최상위에 둔 세계관이다.
◇평양은 2년여에 걸쳐 민족을 지웠다
그 세계관의 전제는 북한도 같은 민족의 한 축이라는 것이었다. 2000년 6·15 공동선언 1항의 "우리 민족끼리"는 그 전제를 남북 정상이 함께 문서로 남긴 표현이었다.[14] 이 전제를 거둬들인 것은 북한이었다.
2023년 12월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남북관계가 "더이상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 전쟁중에 있는 두 교전국관계로 완전히 고착"됐다고 규정했다.[15][16] 2024년 1월 최고인민회의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와 민족경제협력국, 금강산국제관광국을 없앴다.[17] 김 위원장은 같은 날 시정연설에서 한국을 "철두철미 제1의 적대국"으로 교육하도록 헌법에 명기하라고 지시했다. 범민련 북측본부와 6·15 북측위원회 같은 대남 기구도 정리됐다.[18]
그 뒤로도 지우기는 이어졌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북한이 2024년 6월 당규약에서 "조국의 평화통일", "민족대단결", "남조선에서 미제의 침략 무력을 철거" 같은 문구를 삭제했다고 올해 9월 공개했다.[19] 올해 2월 9차 당대회에서 김 위원장은 한국을 "동족이라는 범주에서 영원히 배제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아산정책연구원 분석 보고서는 전했다.[20] 3월에는 헌법을 고쳐 "남쪽으로 대한민국과 접하고 있는" 영토 조항을 새로 넣고 "자주평화통일"과 "민족대단결"을 뺐다.[21]
다만 북한은 '적대국'이나 '교전국'이라는 표현은 헌법에 넣지 않았다.[21] 개정 헌법 내용이 알려지기 전인 올해 4월에는 두 국가론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기는 이르다는 반론도 나왔다.[22] 그러나 2년여 동안 대남 기구, 당규약, 헌법에서 '민족'과 '통일'이 차례로 빠졌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남쪽의 응답: 해체, 간판 바꾸기, 반미, 그리고 버티기
평양의 선택에 남쪽 민족 좌파 단체들의 대응은 여러 갈래로 나뉘었다.
첫째는 해체다. 범민련 남측본부는 존재 근거를 잃었다며 문을 닫았다.[2] 해외 쪽에서는 6·15 해외측위원회가 같은 해 3월 해산했다.[23]
둘째는 간판 바꾸기다.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는 2024년 6월 '자주통일평화연대'로 이름을 바꾸고 기존 활동의 성과를 계승하겠다고 밝혔다.[24] '6·15 공동선언'을 이름에서 내리고 '자주'를 앞세웠다. 친북 성향 논객 한호석은 두 국가론이 연방제 통일정책을 "더 이상 추진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된다고 말했고, 자신이 운영하던 연구소의 이름에서도 '통일'을 뺐다.[25]
셋째는 반미로의 후퇴다. 범민련 남측본부의 후속 조직 한국자주화운동연합(자주연합)은 2024년 4월 첫 모임에서 "반미·반제 자주를 기본으로" 삼겠다고 밝혔다.[26] 원진욱 전 사무처장도 "친미로 망한 나라 반미로 되살리자"를 시대적 과제로 내세웠다.[2] 두 달 뒤 북한은 당규약에서 "남조선에서 미제의 침략 무력을 철거"라는 문구를 지웠다.[19] 평양이 문서에서 내려놓은 대남 반미 목표를 서울의 후속 조직은 오히려 앞세웠다.
넷째는 버티기다. 해산 총회에서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상임공동대표는 "연방통일정부로 나아가겠다"고 말했다.[27] 올해 6월 자주연합 회의실에서 열린 토론회는 적대적 두 국가 관계 속에서도 자주·민주·통일 과제가 유효하다고 재확인하며, 노선 전환을 주장하는 쪽을 비판했다.[28] 진보당 김재연 상임대표는 2021년 광복절에 "2025년까지 남북연합시대"를 열겠다고 공약했다.[29] 그 2025년이 오기 전에 북한은 연방제의 전제를 거둬들였다. 한국진보연대와 민주노총 통일위원회가 두 국가론에 대한 공식 입장이나 노선 변경 문서를 냈는지는 NEXT가 확인하지 못했다.
◇NEXT의 판단: 퇴장의 방아쇠는 평양이 당겼다
NEXT는 민족 좌파의 퇴장을 앞당긴 것이 남쪽의 비판이나 수사가 아니라 평양의 선택이었다고 본다. 민족공조론은 북한이 같은 민족으로서 호응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이념이다. 상대가 그 호응을 공식 문서에서 지우자, 이 이념을 붙든 쪽은 해체하거나 간판을 바꾸거나 반미로 물러서거나, 상대 없는 강령을 붙들고 버텨야 했다.
반미로 옮겨 간 흐름에는 기회와 한계가 함께 있다. 여론의 대미 감정은 나빠졌다. 퓨리서치센터가 올해 8월 발표한 조사에서 한국인의 미국 호감은 45%, 비호감은 55%였다. 2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비호감이 과반이 됐다.[30] 그러나 여론의 반미와 운동의 반미·반제는 다르다. 같은 해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조사에서 미국을 가장 친밀한 나라로 꼽은 응답은 71.9%였다.[31] 대미 여론의 악화가 '미제 축출'을 내건 운동에 대한 지지로 이어질지는 별개의 문제다. NEXT는 '민족 화해'라는 넓은 명분을 잃은 반미·반제 운동이 대미 여론의 악화를 흡수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이 판단을 바꿀 조건도 있다. 북한은 헌법에 '적대'를 넣지 않아 여지를 남겼다. 평양이 다시 '민족'을 꺼내 들면 남쪽의 민족 담론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드러난 문서의 방향은 한쪽이다. 민족을 먼저 버린 것은 평양이었고, 다음 편에서 보듯 남쪽의 세대도 통일에서 멀어지고 있다.
출처
[1] MBC, 북한 대남기구 정리에 범민련 남측본부 해산, 2024.3.1. ↩
[2] 통일뉴스, 원진욱,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의 해산 이유와 진로, 2024.2. ↩
[3] 국가정보원, 주요 이적단체 판결사례. ↩
[4] Mi Park, Organizing Dissent against Authoritarianism: The South Korean Student Movement in the 1980s, Korea Journal 45(3), 2005. ↩
[5]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 김세진·이재호 분신 사건. ↩
[6] 경향신문, 김영환·이석기, 82학번 주사파의 '엇갈린 30년', 2012.5.18. ↩
[7] 한국일보, 「친북 통일투쟁」 내세운 NL계 득세/한총련 어떤 조직, 1996.8.15. ↩
[8] 시사저널, '전대협'에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주사파', 2018.2.5. ↩
[9] 한국일보, 헌법재판소 통진당 해산 결정문 요약본, 2014.12.19. ↩
[10] 한국일보, 본보·요미우리 공동 여론조사 최대 군사적 위협, 2005.6.10. ↩
[11] 한국일보, "주사파 1만5천여명"/박홍총장, 87년이후, 1994.8.26. ↩
[12] 프레시안, 김제완, 김영환은 주체사상을 버리지 않았다, 2012.8.8. ↩
[13] 오마이뉴스, "주사파는 극소수... 386 전체 빨갱이 매도 말라", 2006.11.9. ↩
[14] 국가기록원, 6.15 남북공동선언. ↩
[15] 경향신문, 북한 두 국가론 관련 보도, 2026.5.23. ↩
[16] 통일뉴스, 국회 '두개국가론' 토론회, 2024.9.27. ↩
[17] 서울신문, 북한 조평통·금강산국제관광국 폐지, 2024.1.16. ↩
[18] 서울신문, 김정은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 2024.1.16. ↩
[19] 경향신문, 북 당규약에서 '남조선'·'통일' 삭제, 2026.9.3. ↩
[20] 아산정책연구원, 차두현·한기범·서보배, 북한 9차 노동당대회 결과 분석(이슈브리프 2026-11), 2026.3.4. ↩
[21] 머니투데이, 북 개정 헌법 영토 조항, 2026.5.6. ↩
[22] 데일리NK, 정교진, 북한의 '두 국가론' 무비판적 수용, 2026.4.13. ↩
[23] 아주경제, 6·15 해외측위원회 해산, 2024.3.14. ↩
[24] 서울평양뉴스, 6·15남측위 '자주통일평화연대'로 명칭 변경, 2024.6.16. ↩
[25] 통일뉴스, 한호석 인터뷰, 2024.2.2. ↩
[26] 통일뉴스, "반미·반제 자주를 기본으로, 전선운동 시급히 정비·강화해야", 2024.4.27. ↩
[27] 통일뉴스, 범민련 남측본부 해산 총회 보도, 2024.2. ↩
[28] 통일뉴스, "적대적 두 국가 관계 속에서도 자주·민주·통일 과제 유효", 2026.6.21. ↩
[29] 서울신문, 김재연 "2025년까지 남북연합시대", 2021.8.15. ↩
[30] Pew Research Center, How South Koreans view their relationship with the US, 2026.8.24. ↩
[31] 이데일리, "통일 필요" 63.8%→39%, 2026.9.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