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광복절 경축식이 열린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2010년 3월 촬영한 자료사진이다.
1974년 광복절 경축식이 열린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2010년 3월 촬영한 자료사진이다.
사진: Korea.net / 해외문화홍보원 · KOCIS the National Theater of Korea (6387766973).jpg · CC BY-SA 2.0

2026년 9월 28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페이스북에 영화 「암살자(들)」에 관한 글을 올렸다. 그는 이 영화가 "육영수 여사 피격의 배후에 박정희 대통령이 있다는 참으로 황당한 스토리라고 한다"며 "심지어 북한의 선전영화 <민족과 운명>을 리메이크한 수준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고 썼다.[1] 같은 날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은 제작사에 사과와 상영 중단을 요구했다.[2] 더불어민주당 박성준 수석대변인은 "국민의힘의 공작 DNA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고 맞받았다.[3]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식장의 총성을 다룬 이 영화는 9월 23일 개봉해 9월 30일까지 176만여 명이 봤다.[4] 그사이 제작진에 대한 고발과 국정감사 증인 채택 시도, 규탄 집회가 이어졌다.[5][6] 52년 전 사건 하나가 다시 정치권을 둘로 갈랐다.

◇무엇을 두고 싸웠나

사건에 대한 한일 두 나라의 결론부터 엇갈렸다. 한국 정부는 재일교포 2세 문세광의 범행을 조총련을 통한 북한의 지령으로 발표했고, 문세광은 그해 12월 사형이 집행됐다. 일본 수사 당국은 문세광의 단독 범행으로 결론 내렸다.[7] 이후 경호원의 오발로 육영수 여사가 맞았다는 의혹도 제기됐다.[8]

영화에서는 극 중 인물들이 당시 정권이나 중앙정보부가 사건을 기획했을 가능성을 가설로 내놓는다.[9] 허진호 감독은 "대통령이 그것을 지시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고 말했고, 제작사는 "영화 어디에서도 특정 인물을 사건의 배후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10][9]

영화를 비판하는 쪽은 북한의 범행으로 결론 난 사건에서 영화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배후로 암시한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고인과 유족의 명예를 훼손한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주호영 의원은 문세광의 범행이 수사와 재판으로 확인된 역사적 사실이라고 강조했다.[6] 장동혁 대표가 근거로 든 '김정일 사과'는 사실관계가 엇갈린다. 박근혜 전 대통령 본인의 2002년 기자회견과 자서전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과한 대상은 1968년 1·21 청와대 습격 사건이었다. 육영수 사건에 대한 사과는 같은 해 일본 통신사의 익명 소식통 보도에서 나왔고, 당시 박 전 대통령 측은 이를 부인했다.[11][12]

영화를 옹호하거나 비판에 반박하는 쪽은 창작의 자유와 유신 시대 국가 권력의 불투명성을 내세웠다.[5][13] 문화평론가 위근우는 경향신문 칼럼에서 보수가 '역사 왜곡'이라는 말을 선점해 역사 전쟁의 피해자라는 지위를 차지하려 한다고 비판했다.[13] 장동혁 대표는 다음 날 "좌파 진영이 끊임없이 이승만 대통령·박정희 대통령을 공격하는 이유는 하나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려는 것"이라고 썼다.[14]

◇역사 전쟁의 두 축

한국 현대사를 둘러싼 논쟁은 오래 두 개의 축 위에서 벌어졌다. 하나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축이다. 박정희 시대를 경제 성장으로 기억할 것인가, 독재와 국가 폭력으로 기억할 것인가의 문제다. 다른 하나는 민족과 반공의 축이다. 북한을 같은 민족의 한 축으로 볼 것인가,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적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다.

두 번째 축이 정치의 전면에 선 무대가 1980년대 대학이었다. 미국을 한국 문제의 근원으로 보고 민족 통일을 첫 과제로 삼은 민족해방(NL) 계열이 학생운동의 주류가 됐고, 그 안에서 북한의 주체사상을 받아들인 이른바 주사파가 세를 얻었다.[15][16] 대중 역사서에서는 1979년부터 나온 『해방전후사의 인식』이 50만~60만 부 팔렸다. 2006년 이 책을 비판하며 나온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에서 이영훈은 앞의 책을 "1980년대 좌파민족주의 진영의 정치학에 충실한 실천적 역사쓰기"라고 규정했다.[17]

◇이번 논쟁에서 빠진 것

이번 「암살자(들)」 논쟁은 첫 번째 축 위에서 벌어졌다. 쟁점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 유신 시대 국가 권력, 창작의 자유와 명예훼손이었다. 북한은 영화를 비판하는 쪽이 문세광 사건의 배후로 거론했을 뿐, 영화를 옹호하는 쪽에서 '민족'이나 '통일'을 내세운 목소리는 NEXT가 확인한 범위에서 찾기 어려웠다.

NEXT는 이 빈자리가 지금 한국 정치의 변화를 보여 준다고 본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둘러싼 역사 전쟁은 52년 전 사건 하나로 정치권을 움직일 만큼 여전히 뜨겁다. 그러나 1980년대 대학에서 시작돼 한 세대 동안 한국 좌파의 한 흐름을 움직인 '민족'과 '통일'의 언어는 그 전쟁에서 빠지고 있다.

그 배경은 세 가지다. 북한이 먼저 민족을 버렸다. 북한은 2024년 1월 대남 기구를 없앴고, 올해 3월에는 헌법에서 '자주평화통일'과 '민족대단결'을 뺀 것으로 알려졌다.[18][19] 젊은 세대도 통일에서 멀어졌다. 올해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조사에서 통일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20대 25.2%, 30대 27.0%에 그쳤다.[20] 민족 좌파의 뿌리를 가진 쪽에서도 교리를 내려놓는 목소리가 나왔다. 전대협 3기 의장 출신인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2024년 9월 "두 개의 국가를 수용하자"고 말했다.[21][22]

◇이 특집이 다루는 것

NEXT는 이 퇴장의 과정을 세 편에 걸쳐 짚는다.

1부 「평양이 먼저 민족을 버렸다」는 민족공조의 상대인 북한이 2년여에 걸쳐 민족과 통일을 지운 과정과 남쪽 단체들의 대응을 다룬다. 2부 「통일을 내려놓은 것은 세대였다」는 20년 여론을 쟁점별로 나눠 세대가 무엇을 거부하고 무엇을 지켰는지 본다. 3부 「이념은 떠나고 권력은 남았다」는 대학에서 여의도로 간 운동권의 두 갈래 길과 86세대, 그리고 이들을 '주사파'로 몰아 끝내려던 척결 정치의 결말을 다룬다.

특집의 대상은 특정 인물이 아니라 '민족과 통일을 최상위에 둔 세계관'이다. 운동권 출신, 86세대, 민족해방(NL) 계열, 주사파는 서로 다른 말이다. NEXT는 스스로 밝히거나 법원이 인정한 경우가 아니면 누구에게도 '주사파'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암살자(들)」과 제작진의 생각도 규정하지 않는다.

출처

[1] 오마이뉴스, 장동혁 대표 페이스북 글 등 보수 야권 반응 보도, 2026.9.28. ↩

[2] 오마이뉴스,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상영 중단 요구·감독 입장 보도, 2026.9.29. ↩

[3] 머니투데이, 민주당 "공작 DNA" 반박, 2026.9.29. ↩

[4] 아이즈, 「암살자(들)」 박스오피스 보도, 2026.10.1. ↩

[5] 더팩트, 「암살자(들)」 국감 증인 채택 논란, 2026.9.30. ↩

[6] 서울신문, 「암살자(들)」 규탄 집회·고발 보도, 2026.10.1. ↩

[7]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육영수 저격 사건(문세광 사건). ↩

[8] 프레시안, 육영수 저격 음향 분석, 2005.2.11. ↩

[9] 아주경제, 역사왜곡 논란에도 흥행 1위…'암살자(들)', 관객 평가는 극과 극, 2026.9.29. ↩

[10] MBC 뉴스데스크, 허진호 감독 인터뷰, 2026.9.29. ↩

[11] 서울신문, 박근혜 자서전 속 김정일 발언, 2011.12.20. ↩

[12] 오마이뉴스, '김정일 사과' 주장 사실관계, 2026.9.28. ↩

[13] 경향신문, 위근우 칼럼, 2026.10.1. ↩

[14] 파이낸셜뉴스, 장동혁 대표 SNS 발언 보도, 2026.9.29. ↩

[15] Mi Park, Organizing Dissent against Authoritarianism: The South Korean Student Movement in the 1980s, Korea Journal 45(3), 2005. ↩

[16] 한국일보, 「친북 통일투쟁」 내세운 NL계 득세/한총련 어떤 조직, 1996.8.15. ↩

[17] 한국일보,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출간/ "解前史는 편향", 2006.2.9. ↩

[18] 아주경제, 북한 조평통 등 대남기구 폐지, 2024.1.16. ↩

[19] 머니투데이, 북 개정 헌법 영토 조항, 2026.5.6. ↩

[20] 한국일보, '통일 필요하다'는 국민 5명 중 겨우 2명, 2026.9.28. ↩

[21] 경향신문, 임종석 '두 국가론' 발언 보도, 2024.9.28. ↩

[22] 서울신문, 임종석 비서실장 프로필, 2017.5.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