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Korea.net / 해외문화홍보원 · KOCIS the National Theater of Korea (6387766973).jpg · CC BY-SA 2.0
1974년 8월 15일 오전,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제29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경축사를 읽던 중 총성이 울렸다. 재일교포 2세 문세광이 쏜 총에 육영수 여사가 머리를 맞아 그날 숨졌다. 여학생 장봉화 양도 목숨을 잃었다.[1]
52년 뒤인 2026년 9월 23일, 이 사건을 소재로 한 허진호 감독의 영화 「암살자(들)」이 개봉했다. 영화는 개봉 나흘째 누적 관객 100만 명을 넘기며 사흘 연속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2] 흥행과 함께 논쟁도 커졌다. 영화가 공식 수사 결론과 다른 가능성을 다룬다는 비판과 함께, 확인되지 않은 의혹이 관객에게 사실처럼 남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3]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가 역사 논쟁을 부른 것은 처음이 아니다. 법정까지 간 영화도 있고, 영화 한 편이 기록 공개법으로 이어진 나라도 있다. 「암살자(들)」 논쟁은 창작의 자유와 역사 기록 사이의 경계라는 오래된 문제를 다시 꺼냈다.
◇1974년 8월 15일, 기록이 말하는 것
수사와 재판으로 확정된 사실부터 보자. 문세광은 9월 12일 내란목적살인 등 여섯 개 죄명으로 기소됐다. 대법원은 12월 17일 사형을 확정했고, 사흘 뒤인 12월 20일 서대문구치소에서 형이 집행됐다.[1][4]
한국과 일본의 수사 결론은 달랐다. 한국 정부는 조총련을 통해 북한의 지령을 받은 범행으로 발표했다. 일본 수사 당국은 같은 해 12월, 김대중 납치 사건에 분노한 문세광의 단독 범행으로 결론지었다.[1][5]
이 차이는 외교 갈등으로 번졌다. 2005년 1월 공개된 한국 외교문서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일본에 공범 수사 협조와 조총련 규제를 요구했고 일본이 미온적으로 나오자 국교 단절까지 검토했다. 미국은 오히려 한국이 단교하면 방위를 책임질 수 없다며 한국에 압력을 넣었다.[6] 이 문서는 한일 외교의 긴장을 기록한 것으로, 총탄의 출처와는 관련이 없다.
◇52년 동안 풀리지 않은 질문
공식 결론은 문세광이 쏜 총탄이 육 여사에게 맞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후 다른 주장이 꾸준히 제기됐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경호원 오발설이다. 2005년 2월 배명진 숭실대 교수는 당시 녹음을 음향 분석해, 네 번째 총성의 특성이 문세광의 총과 다르고 육 여사는 경호원이 쏜 총알에 맞았다고 주장했다. 같은 보도에는 당시 서울시경 감식계장 이건우 씨가 1989년 인터뷰에서 문세광의 총에 맞은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는 내용도 인용됐다.[7] 이 분석을 다룬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증거가 충분하지 않아 의혹을 소개하는 수준이며 제작진의 결론은 아니라고 밝혔다.[8]
오발설을 확인한 정부 재조사나 사법 판단은 지금까지 없었다. 영화는 이 공식 결론과 제기된 의혹 사이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영화가 지어낸 것과 암시하는 것
「암살자(들)」의 주인공 셋은 모두 영화가 만든 인물이다. 경호를 맡았던 형사 철구(유해진), 신문사 사회부장 재환(박해일), 신입 기자 영일(이민호)이 서로 다른 자리에서 사건을 좇는다. 범인 문세광은 '문태광'으로 이름을 바꿔 등장한다.[9]
영화가 무엇을 말하는지에 대한 평가는 갈린다. 한국일보는 영화가 섣불리 결론을 내리지 않은 채 배후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고 봤다.[9] 씨네21은 영화가 한 가지 가설을 진실이며 정답이라고 밀어붙이지 않는다고 평했다.[10] 반면 영화가 경호원 발포설을 시사한다고 보는 비판도 있다.[11]
허진호 감독은 "팩트를 기반으로 영화적 상상력을 가지고 만들었다"며, 음모나 은폐가 있었는지에 대한 결론은 관객의 판단에 맡겼다고 말했다.[12] 영화로 사건의 결론을 낼 수는 없어 기록에 남은 '왜?'에 집중했다고도 했다.[13]
◇논쟁은 영화 밖에서 커졌다
비판은 주로 영화가 공식 결론과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는 방식을 향한다. 펜앤마이크에 실린 정보흠 씨의 칼럼은 영화가 경호원 발포설을 시사하면서 창작의 영역이라는 말로 비판을 피한다고 지적했다.[11] 천지일보는 확인되지 않은 의혹이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는 단서처럼 반복되면, 영화적 의혹이 관객에게 사실처럼 남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3]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리뷰도 논쟁에 휘말렸다. 그는 결론을 섣불리 확정하지 않는 영화의 태도를 높이 평가했다. 그러자 온라인에서는 그가 과거 영화 「관타나모로 가는 길」을 두고 재연 장면이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위험을 지적했던 것과 잣대가 다르다는 지적이 나왔다.[14]
영화를 옹호하는 쪽은 감독이 스스로 결론을 관객에게 맡겼고, 영화가 한 가지 가설을 정답처럼 내세우지 않는다는 점을 든다.[12][10] NEXT는 이 논쟁에 영화의 완성도에 대한 평가뿐 아니라 1974년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 차이도 반영돼 있다고 본다.
◇'실화 바탕'이 법정까지 간 적도 있다
한국 영화에서 이 논쟁이 가장 첨예했던 것은 2005년 「그때 그사람들」이다. 10·26 사건을 다룬 이 영화에 대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 씨가 상영금지 가처분을 냈다. 법원은 영화 앞뒤에 들어간 실제 다큐멘터리 장면 세 곳을 빼는 조건으로 상영을 허용했다. 극영화 안의 실제 기록 화면이 관객에게 영화 전체를 허구가 아닌 실제로 인식하게 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15] 본안 소송은 1심에서 1억 원 배상이 인정된 뒤, 2008년 항소심에서 조정으로 끝났다.[16]
이후 한국 실화 영화들은 대체로 실존 인물의 이름을 바꾸는 쪽을 택했다. 「남산의 부장들」은 김재규를 김규평으로, 「서울의 봄」은 전두환을 전두광으로 바꿨다. 「서울의 봄」의 김성수 감독은 "제 마음껏 하기 위해 이름도 바꿨다"고 설명했다.[17] 이름을 바꾸면 관객은 이것이 재구성이라는 신호를 받는다. 만드는 사람은 그만큼 각색의 여지를 얻는다. 「암살자(들)」이 범인의 이름을 바꾼 것도 같은 선택이다.
이름을 바꿔도 논란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택시운전사」의 실제 주인공 김사복 씨의 아들은 영화 속 인물이 돈 때문에 광주에 간 것으로 그려진 점이 실제와 다르다고 밝혔다.[18]
◇할리우드도 같은 고민을 했다
해외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1991년 올리버 스톤 감독의 「JFK」는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의 배후에 음모가 있다는 시각으로 큰 논쟁을 불렀다. 이듬해 미국 의회는 암살 관련 정부 기록을 공개하도록 하는 법을 만들었다. 이 법에 따라 활동한 기록검토위원회는 1998년 최종보고서에서, 의회가 기록 접근 제한에 좌절하고 이 영화의 결론에 "disturbed"(불편함을 느낀) 상태에서 법을 통과시켰다고 적었다.[19] 역사 왜곡이라는 비판을 받은 영화가 기록 공개법 제정의 계기 가운데 하나가 됐다.
영국 왕실을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 「더 크라운」은 고지 문구가 쟁점이 됐다. 2020년 영국 문화부 장관이 허구라는 사실을 알리는 문구를 넣으라고 요구하자 넷플릭스는 그럴 계획도, 필요도 없다며 거절했다.[20] 2022년 비판이 다시 이어지자 넷플릭스는 시즌5 예고편 설명에 "허구의 극화"라는 문구를 넣었다.[21]
◇이름을 바꾸면 선이 그어지나
「그때 그사람들」 이후 20여 년, 한국 실화 영화가 찾은 해법은 이름 바꾸기였다. 김재규는 김규평이 됐고, 전두환은 전두광이 됐고, 문세광은 문태광이 됐다. 이름을 바꾼 영화는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한 창작물로 취급된다. 그만큼 소송의 위험은 줄어든다.
그런데 이름이 바뀌어도 관객은 스크린 속 김규평에게서 김재규를 본다. 이름을 바꾸는 순간 영화는 법적으로는 창작물이 되지만, 관객에게는 여전히 1979년 10월 26일의 이야기로 읽힌다. 이름을 바꿔도 사실과 허구를 가르는 일은 관객에게 남는다.
만드는 사람이 이 구분을 영화 안에서 모두 해 줄 수도 없다. 가상 인물의 추리와 기록된 사실을 장면마다 나눠 보여 주면 극영화가 성립하기 어렵다. 관객이 극장을 나선 뒤 확인할 자료는 영화 밖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영화가 던진 질문에 답하는 것은 기록이다
「JFK」 이후 미국 의회가 택한 방법은 영화를 반박하는 것도, 막는 것도 아니었다. 영화가 불러일으킨 의심에 정부 기록을 여는 법으로 답했다. 이 법에 따라 활동한 기록검토위원회는 기록 접근이 막힌 데 대한 좌절과 영화의 결론에 대한 불편함을 입법 배경으로 적었다.[19]
「암살자(들)」이 던지는 질문도 결국 기록에 관한 것이다. 그날 몇 발의 총성이 울렸는지, 수거된 탄두는 누구의 총에서 나왔는지, 감식 결과는 무엇이었는지는 수사와 감식 기록에 남아 있어야 할 내용이다. 한일 갈등의 실상도 사건 30년 뒤 외교문서가 공개되면서야 드러났다.[6]
NEXT는 이 영화가 남긴 가장 의미 있는 질문이 '영화가 역사를 왜곡했는가'보다 '우리는 어떤 기록으로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가'라고 본다. 52년이 지난 사건의 수사와 감식 기록 가운데 무엇이 공개돼 있고 무엇이 공개되지 않았는지, 공개되지 않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를 따져 볼 수 있다. 이 영화로 1974년 8월 15일을 다시 접한 관객은 개봉 나흘 만에 100만 명을 넘었다.[2]
기록이 공개돼도 의혹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반론도 있다. 그래도 기록이 공개되면 논쟁의 근거가 상상에서 문서로 바뀐다. NEXT는 52년 전 수사·감식 기록의 공개 범위를 확인하는 일이 이 영화가 불러온 논쟁을 한 걸음 진전시킬 출발점이라고 본다.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육영수 저격 사건(문세광 사건). ↩
[2] 경향신문, 「암살자(들)」 개봉 4일째 100만 돌파, 2026.9.26. ↩
[3] 천지일보, '암살자(들)' 흥행 속 역사왜곡 우려, 2026.9.26. ↩
[4] 머니투데이, 문세광 사형 집행, 2023.12.20. ↩
[5] 한국일보, 문세광 사건 한일 수사 결론, 2005.1.21. ↩
[6] 경향신문, 외교문서 공개: 문세광 사건 한일 갈등, 2005.1.20. ↩
[7] 프레시안, 육영수 저격 음향 분석, 2005.2.11. ↩
[8] 오마이뉴스, 육영수 저격 음향 분석과 제작진 입장, 2005.2.11. ↩
[9] 한국일보, 「암살자(들)」 리뷰와 인물 구성, 2026.9.22. ↩
[10] 씨네21, 「암살자(들)」 리뷰: 6번의 총성, 사라진 두 발의 행방, 2026.9.23. ↩
[11] 펜앤마이크, 정보흠 칼럼, 2026.9.13. ↩
[12] 일간스포츠, 허진호 감독 인터뷰, 2026.9.10. ↩
[13] 서울신문, 허진호 감독 인터뷰, 2026.9.15. ↩
[14] 아주경제, 이동진 '암살자들' 리뷰 논란, 2026.9.26. ↩
[15] 프레시안, 「그때 그사람들」 가처분 결정, 2005.1.31. ↩
[16] 한국일보, 「그때 그사람들」 항소심 조정, 2008.2.27. ↩
[17] 경향신문, 김성수 감독 「서울의 봄」 인터뷰, 2023.11.22. ↩
[18] 이투데이, 김사복 아들 김승필 인터뷰, 2019.1.2. ↩
[19] Assassination Records Review Board, Final Report, Executive Summary, 1998. ↩
[20] PBS NewsHour, Netflix rejects calls to add disclaimer to 'The Crown', 2020.12. ↩
[21] The Hollywood Reporter, 'The Crown' trailer adds 'fictional dramatization' description, 202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