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유엔본부 앞의 각국 국기. 2007년 3월 촬영한 자료사진이다.
뉴욕 유엔본부 앞의 각국 국기. 2007년 3월 촬영한 자료사진이다.
사진: Valarie · UNflags.jpg · CC BY 3.0

2026년 9월 22일(현지시간)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단계적 구상을 내놨다. 북미 대화 재개와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를 통해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를 멈추고, 중기적 축소를 거쳐 장기적으로 핵 없는 한반도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1] 연설은 제재를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목표에 쓸 수단을 고르는 일은 지금까지 제재가 무엇을 바꿨는지 따지는 데서 시작한다. 핵 개발을 막은 결과와 자금 조달을 어렵게 한 효과는 따로 계산된다.

유엔이 해외에서 소득을 올리는 북한 국적자를 송환하도록 정한 시한은 2019년 12월이었다. 난민법·인권법 등에 따라 송환이 금지되거나 해당국 국적자인 경우에는 예외가 있다.[2] 2026년 9월 나온 다국적제재모니터링팀(MSMT) 보고서는 해외 북한 노동자의 규모를 2025년 말 기준 3만 5,600~10만 1,280명으로 추산했다. 2025년 북한 정부가 이들을 통해 얻은 수입은 4억 5,000만~8억 달러로 평가했다.[3] 하한과 상한의 간격부터 크다. 북한의 외화 수입은 막기도 어렵지만, 얼마가 들어오는지 아는 것조차 어렵다.

같은 달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영변과 강선의 농축 활동 및 보고된 북한의 무기급 핵물질 생산 확대에 우려를 표했다.[4] 제재를 오래 했는데도 북한의 핵 활동은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제재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나.

쉬운 답은 두 가지다. 핵을 포기하지 않았으니 실패라는 답, 돈 구하기가 어려워졌으니 효과가 있었다는 답이다. 두 답은 서로 다른 결과를 두고 하는 말이다. 정책을 고치는 데 쓸 수 있는 답은 북한의 선택과 조달 여건이 각각 어떻게 달라졌는지에서 나온다.

◇성적표는 한 장이 아니라 세 장이다

제재의 성적표는 적어도 세 장이다. 첫째는 북한 지도부의 선택이다. 핵 개발을 중단하거나 되돌리는 결정을 했는가. 둘째는 개발과 조달의 조건이다. 필요한 돈과 장비를 얻는 데 시간과 비용이 더 드는가. 셋째는 협상의 가능성이다. 제재 완화를 얻으려고 북한이 검증 가능한 조치를 제안하는가.

첫째 성적표는 미달이 분명하다. IAEA는 9월 7일 발표에서 영변의 새 건물이 기존 농축시설과 유사한 규모·기반시설을 갖췄고, 공개된 사진에서 원심분리기와 유사한 장비가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는 관찰과 평가다. 현장 사찰로 생산량을 확인한 결과는 아니다. 그래도 북한의 핵 활동이 포기 단계에 들어갔다는 설명과는 양립하기 어렵다.[4]

둘째 성적표에는 다른 증거가 있다. MSMT는 중국 은행의 자금세탁 감시와 불법 중개업자 단속이 강화되면서 북한의 기존 송금이 어려워졌고, 현금을 직접 나르는 방식에 더 기대게 됐다고 보고했다.[3] 규제가 거래 방식을 바꾼 사례다. 다만 현금 운반의 불편과 비용이 늘었다는 사실만으로 핵 개발이 몇 년 늦어졌는지는 계산할 수 없다. 회피에 성공한 거래와 실패한 거래의 전체 규모를 모르기 때문이다.

반대 방향의 과장도 있다. 적발된 선박이나 제재 대상 회사의 수가 늘었다고 북한에 들어간 자원이 그만큼 줄었다고 할 수는 없다. 단속이 나아졌을 수도, 위반이 늘었을 수도 있다. 회사 이름을 바꿔 거래를 이어 갔다면 지정 건수는 늘어도 차단 효과는 작다. 제재를 집행한 기록과 제재가 만든 결과는 서로 다른 자료다.

북한 경제가 나빠졌다는 설명도 모자란다. 교역에는 제재 말고도 북한 자신의 국경 통제, 상대국의 경기와 정책, 국내 생산 사정이 함께 작용한다. 제재의 몫을 떼어 내지 않고 경제적 고통을 성과로 내세우면 가장 중요한 질문이 빠진다. 그 비용을 누가 치렀고, 지도부의 선택은 실제로 바뀌었는가.

◇노동자는 학생 신분으로, 돈은 가상자산으로

유엔 대북제재는 핵·미사일 관련 물자만 묶는 제도가 아니다. 무기, 금융, 특정 품목의 수출입, 해외 노동 등 여러 통로를 다룬다. 무엇을 금지하는지는 품목과 주체, 결의의 예외에 따라 다르다. 북한과 관계된 모든 거래가 일괄 금지됐다고 이해하면 인도적 지원도, 집행의 빈틈도 설명이 안 된다.[5]

해외 노동이 대표적인 예다. 제재의 목적은 국적을 이유로 개인의 생계를 벌하는 데 있지 않다. 북한 당국이 해외 노동을 조직하고 그 수입을 가져가는 통로를 좁히는 데 있다. 그러니 귀국한 노동자 수만으로는 성과를 잴 수 없다. 당국에 귀속되는 수입이 줄었는지, 노동자가 다른 체류 자격이나 고용 형태로 다시 들어갔는지, 집행 과정에서 개인의 권리가 침해되지 않았는지가 함께 성적표에 들어간다.

9월 보고서가 주목한 것은 러시아에서 학생 신분을 이용한 노동자 입국 등이다. 보고서는 참여국 정보와 공개자료를 종합한 조사다. 인용한 언론 자료를 모두 독립 검증하지는 못했지만, 내용을 평가해 높은 신뢰도를 부여했다고 스스로 밝혔다.[3] 여기 실린 추정치는 확정된 회계장부가 아니다. 해외 노동 수입 전체가 핵 개발에 쓰였다고 볼 근거도 없다. 자금의 용도와 실제 이동은 따로 추적하는 문제다.

해외 노동 수입에는 IT 인력의 소득도 들어간다. IT 업무의 대가로 받는 급여와 해킹으로 훔친 자산은 다르다. 국경을 넘는 사람이 없어도 돈은 움직인다. MSMT는 2025년 10월 사이버·IT 인력 보고서에서 2024년 1월부터 2025년 9월까지 북한에 귀속한 가상자산 탈취액을 최소 28억 달러로 평가했다.[6] 해당 기간의 탈취액이다. 북한이 실제로 현금화해 쓸 수 있게 된 순수입도, 특정 해의 핵 개발 예산도 아니다. 앞의 노동 수입 추정과 더해 ‘핵 자금 총액’을 만들 수 없는 이유다.

그래도 이 숫자는 정책의 방향을 바꾼다. 제재를 항구와 세관의 일로만 보면 원격 채용과 디지털 자산 거래에서 생기는 위험이 보이지 않는다. 기업의 채용 담당자, 거래소의 사고 대응팀, 금융당국의 자금 추적 능력이 안보 정책과 이어진다. 단속 대상을 많이 발표하는 것보다, 거래가 끝나기 전에 정보를 넘기고 적법한 절차로 자금 이동을 막는 능력이 더 중요해진다.

◇감시단은 거부권 한 번에 문을 닫았다

감시의 구조도 달라졌다. 유엔 1718위원회를 지원하던 전문가패널의 임기는 2024년 4월 30일 끝났다. 패널이 활동을 끝냈다고 제재가 폐지된 것은 아니다. 유엔은 지금도 1718위원회를 통해 제재 조치와 관련 절차를 안내한다.[5]

패널 임기 연장을 막은 것은 러시아의 거부권이었다. 당시 러시아 대표는 제재를 매년 검토하는 방식으로 바꾸자고 주장했고, 기존 패널에 더는 부가가치가 없다고 설명했다.[7] 그 설명에 동의하든 않든, 제재를 처음 만들 때의 국제적 합의가 집행 단계까지 이어진다는 전제는 무너졌다.

패널이 사라진 자리에서는 한국·미국·일본 등을 포함한 11개국이 출범시킨 MSMT가 위반 사례를 조사해 발표한다. 다만 유엔 전문가패널을 그대로 이어받은 유엔 기구는 아니다.[8] 보고서를 내는 것과 관련국에 조사 협조나 처분을 강제하는 것 사이에도 거리가 있다. 보고서의 증거가 수사와 거래 차단으로 이어지는 것은 개별 국가가 권한을 쓰고 서로 협력할 때다.

여기서 두 입장이 각자 곤란한 질문을 만난다. 제재 강화론이 받는 질문은 이렇다. 집행 의지가 없는 주요국이 거래를 계속 허용한다면, 금지 항목을 늘려도 같은 곳으로 새지 않는가. 제재 무용론이 받는 질문은 반대다. 집행이 불완전하다고 규칙까지 없애면, 아직 협력하는 나라와 기업은 무엇을 근거로 거래를 제한하는가.

NEXT는 모든 경로를 봉쇄하겠다는 약속보다, 협력하는 국가와 기업이 실제로 통제할 수 있는 거래부터 좁히는 쪽이 현실적이라고 본다. 결제망이나 공급업체가 규정을 따르는 곳에서는 집행이 작동할 여지가 있다. 외부 압박을 감수하고 국가가 직접 지원하는 거래에는 같은 수단이 덜 듣는다. 집행 인력과 예산도 이 차이에 맞춰 나누는 편이 낫다.

◇유엔 면제를 받아도 결제·운송·통관이 남는다

제재 비판론의 가장 무거운 근거는 주민이 치르는 비용이다. 이것을 ‘북한 정권의 책임’이라는 말로 모두 넘길 수는 없다. 원래 허용된 지원이라도 운송회사나 은행이 위험을 피하려고 거래를 거절하면 집행 과정에서 피해가 더 생긴다. 거꾸로 모든 생활난을 제재 탓으로 돌리면 북한의 자원 배분과 통제 정책이 설명에서 사라진다. 어느 쪽도 충분한 설명이 아니다.

유엔에는 인도적 지원을 위한 면제 절차가 있다. 그러나 위원회의 면제가 관련 국가의 국내 인허가까지 대신하지는 않는다.[9] 지원단체가 유엔 절차를 통과해도 결제·운송·통관 단계가 남는다. 면제 승인 건수만으로 주민에게 물자가 닿았다고 평가할 수 없는 이유다.

한국 정부가 손댈 수 있는 곳은 이 중간 과정이다. 적법한 지원이 어느 단계에서 늦어지는지, 어떤 서류나 불분명한 책임 소재가 거래를 막는지 조사하고 관계 기관이 함께 푸는 일이다. 지원 물자가 실제 수혜자에게 가는지 확인하는 절차도 이 일에 포함된다. 인도적 지원의 문턱을 낮추는 일과 금지된 자금 조달을 막는 일은 서로 다른 성과로 관리할 수 있다.

◇다음 성적표에는 무엇을 적나

제재만으로 북한이 핵을 포기하게 만들 수 있다는 설명은 설득력을 잃었다. 제재를 없애기만 하면 협상의 유인이 생긴다고 볼 근거도 충분하지 않다. 이미 얻고 있는 이익을 포기하고 검증까지 받는 대가로 북한이 무엇을 더 가치 있게 볼지는 별도의 질문이다.

NEXT는 한국의 제재 평가가 발표 건수에서 멈춰서는 부족하다고 본다. 특정 경로를 막은 뒤 거래가 얼마나 오래 끊겼는지, 다른 경로로 대체됐는지, 차단에 든 비용은 얼마였는지를 추적하는 방식이다. 확인할 수 없는 전체 외화 수입을 정밀한 숫자로 꾸미기보다, 좁은 범위라도 실제 결과를 쌓는 편이 낫다. 공개할 수 있는 집행 결과와 비공개 수사 정보를 가르고, 평가 기준은 국회와 시민이 볼 수 있게 두는 것이 원칙이다. 공개는 수사 기법과 협조 기업을 드러낼 위험이 있다. 그래서 개별 거래 정보는 보호하고, 조사 인력과 비용은 따로 심사하는 방식이 맞다.

그 성적표에는 합법적인 지원이 늦어진 사례도 들어간다. 불법 조달을 어렵게 했다는 사실과 주민의 치료를 막지 않았다는 사실은 따로 증명할 문제다.

9월의 보고서는 규칙이 그대로여도 돈이 들어오는 통로와 집행국의 이해는 바뀔 수 있다는 기록이다. 다음 논의는 ‘제재를 지킬 것인가’에서 한 걸음 더 나간다. 어느 거래를 실제로 막고, 어떤 변화가 확인되면 어느 제한을 조정할 것인가. 협상은 그 구체적인 목록에서 시작된다.


출처

[1] 이재명 대통령 제81차 유엔총회 기조연설, 현지 연설 2026.9.22, 원문 등록 9.23.

[2] 유엔 안보리 결의 2397 채택 기록 및 조문, 2017.12.22, 제8항.

[3] MSMT, The DPRK’s Use of Overseas Labour to Violate and Evade UN Sanctions, 2026.9.16.

[4] IAEA 사무총장 이사회 모두발언, 2026.9.7, DPRK 절.

[5] 유엔 1718위원회: 조치와 위임사항.

[6] MSMT 사이버·IT 인력 보고서, 2025.10.22, PDF 27쪽.

[7] 주유엔 러시아대표부의 표결 설명, 2024.3.28.

[8] 일본 외무성, MSMT 제3차 보고서 발표, 2026.9.16.

[9] 유엔 1718위원회 인도적 면제 절차, 특히 국내 인허가에 관한 제한 설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