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Nguyen QuocTrung · DPRK-USA meeting in Hanoi flags 01.jpg · CC BY-SA 4.0 · 밝기 조정본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이 끝난 뒤, 미국과 북한은 같은 협상을 다르게 설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제재 전면 해제를 요구했다고 말했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일부 제재의 해제만 요구했다고 반박했다. 영변의 핵시설과 제재를 바꾼다는 말은 오갔지만, ‘일부’가 얼마나 큰 몫인지부터 맞지 않았다.[1][2]
두 설명이 어긋난 데는 이유가 있다. 결의문 몇 건의 일부 항목만 풀어도 북한의 주요 수출과 외화 수입이 크게 열릴 수 있다. 영변이라는 큰 핵단지를 다루더라도 그 밖의 시설과 이미 만든 핵물질·탄두가 남으면 미국이 매기는 교환 가치는 달라진다. 같은 조치를 북한은 큰 양보로, 미국은 불충분한 조치로 셀 수 있다.
그로부터 7년 넘게 지난 2026년 9월 22일(현지시간), 이재명 대통령은 유엔총회에서 북미 대화 재개와 평화체제 논의 속에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 중단, 중기적 축소, 장기적 비핵화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단계는 제시했지만 단계마다 무엇을 확인하고 어떤 대가를 줄지는 설명하지 않았다.[3]
협상을 준비하는 한국에는 그 빈칸이 핵심이다. 북한의 어떤 조치를 먼저 확인하고, 그 대가로 누가 어떤 제재를 조정할 수 있는가. 정상들이 다시 만날 날짜를 점치는 것은 준비의 일부일 뿐이다. 제한을 어느 범위에서 얼마나 오래 풀고, 그 대가로 무엇을 확인하느냐가 본론이다. 상대가 약속을 지켜도 우리가 대가를 주지 못하거나, 대가를 준 뒤 약속을 확인할 수 없으면 합의문은 출발부터 흔들린다.
◇'영변 폐쇄'는 어느 건물까지인가
하노이 당시 미국의 공개 설명에 이미 이 문제가 들어 있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영변의 범위를 다뤄도 미사일과 탄두, 무기체계가 남는다고 말했다. 트럼프도 영변 외에 더 많은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1] 미국 측의 협상 설명이다. 비공개 협상 전체를 재현한 확정 기록은 아니다.
대니얼 워츠의 동시대 분석에 따르면, 미국 고위 당국자는 북한이 제안한 ‘부분 해제’도 2016년 이후의 광범위한 부문별 제재를 건드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워츠는 두 나라가 생각한 거래의 크기가 달랐다고 봤다. 그는 영변 밖의 시설까지 교환 범위를 넓히거나, 양쪽이 주고받는 것을 함께 줄이는 접근을 검토했다.[2] 거래의 크기는 시설 이름이나 제재 개수로 셀 수 없다는 얘기다.
그 차이는 시간이 갈수록 벌어진다. IAEA가 2026년 9월 발표한 관찰에는 영변의 새 농축시설 관련 건물과 강선의 활동이 함께 나온다.[4] 과거의 ‘영변 폐쇄’라는 표현을 지금 협상에 그대로 가져오면, 어느 건물과 장비와 공정이 들어가는지부터 다시 정의하게 된다. 오래된 협상안은 오늘의 생산 능력에 맞지 않는다.
핵실험을 하지 않는 것, 핵물질을 더 만들지 않는 것, 보유량을 줄이는 것은 서로 다른 약속이다. 실험을 멈춰도 생산은 계속될 수 있다. 한 시설을 멈춰도 다른 시설이 돌 수 있다. 생산을 모두 멈춰도 기존 재고는 그대로다. 첫 합의가 제한적일 수 있다는 판단과, 제한된 합의를 비핵화의 완성처럼 포장하는 일은 구분된다.
◇영변은 두 번 멈췄지만 계속 멈추지는 않았다
북한과의 합의가 아무것도 멈추지 못했다는 주장도 역사를 지나치게 줄인다. IAEA 기록에 따르면 1994년 11월부터 2002년 12월까지 영변에 사찰 인력이 상주하며 제네바 기본합의에 따른 다섯 시설의 동결을 감시했다. 2007년 7월부터 2009년 4월까지는 영변의 정지·봉인 시설을 감시·검증했다.[5] 특정 기간, 특정 시설의 가동을 묶은 경험은 있다.
그렇다고 북한의 핵 계획 전체를 통제한 것은 아니다. 한 장소의 동결을 확인하는 능력과 미신고 활동을 찾아내는 능력은 다르다. 합의 범위 밖에서 문제가 커질 수 있고, 이행을 두고 분쟁이 생기면 사찰 체계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다. 부분 합의의 성적은 그 안에서 막은 일과 그 밖에서 놓친 일을 합쳐 매겨진다.
미 국무부 역사실은 기본합의 이행 과정에서 중유 공급과 경수로 사업의 지연, 북한의 미사일 시험과 다른 무기 활동이 신뢰를 훼손했다고 정리한다.[6] 합의 붕괴의 책임을 반반씩 나누자는 얘기가 아니다. 상대의 위반을 감시하는 장치만큼, 우리가 주기로 한 것을 실제로 이행할 능력도 합의의 수명을 좌우한다는 얘기다.
1994년의 방식을 그대로 되풀이할 수도 없다. 확인할 능력의 범위도, 이미 쌓인 자산의 규모도 그때와 다르다. 오랫동안 현장에 접근하지 못했으니 출발 시점의 재고와 활동을 파악하는 일부터 어렵다. 과거의 동결 경험은 성공의 보증이 아니다. 제한적 합의도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가능성, 그리고 감시가 끊겼을 때 치르는 비용에 대한 경고다.
◇제재를 풀 권한은 누구에게 있나
한국이 제재 완화를 제안할 때 처음 부딪히는 벽은 권한이다. 한국 정부가 바꿀 수 있는 조치, 미국 정부가 바꿀 수 있는 조치, 유엔이 결정할 조치는 겹치지 않는다. 정상 간 합의가 모든 규정의 효력을 한 번에 없애지는 못한다.
유엔 제재에는 기존 결의가 허용한 예외와 위원회의 면제 절차가 있다. 하지만 개별 지원 사업의 면제와 특정 산업의 금지를 통째로 바꾸는 결정은 규모도 권한도 다르다. 유엔의 인도적 면제를 받아도 각국 국내 규정의 허가 요건은 남는다.[7] 그래서 NEXT는 협상 문안에 ‘제재를 푼다’ 대신 거래의 당사자·품목·금액·기간과 담당 기관을 적는 것이 맞다고 본다.
미국 대통령의 권한도 전부 아니면 전무로 설명할 수 없다. 법률에 따른 제재에는 별도의 면제·유예·종료 요건이 붙는다. 미국 법전 22편 9251조가 한 예다. 이 조항은 적용 대상인 일부 제재를 최대 1년 유예하려면 북한의 진전에 대해 대통령이 의회에 인증하도록 요구한다. 요건 목록에는 위폐 제작 중단, 자금세탁 방지, 안보리 결의 준수의 검증, 납치·억류자 문제, 인도지원 감시와 정치범수용소의 생활 조건이 함께 들어 있다. 일부 조항은 유예 대상에서 빠진다.[8] 핵시설 합의만으로 모든 요건이 채워지는 구조가 아니다. 구체적인 거래가 어떤 권한으로 가능한지는 해당 조항과 행정 규정을 따로 따져 봐야 안다.
한국이 자금이나 사업을 마련해도 결제 은행과 보험사, 운송회사가 참여하지 못하면 약속은 이행되지 않는다. 정부가 성과부터 발표하고 나중에 법적 조치를 구하면, 내부 협의에서 막힌 일이 북한에 대한 약속 위반이 된다. NEXT는 기술 협상과 제재 법률 검토가 정치적 선언보다 앞서는 것이 맞다고 본다. 사전 조율이 길어지면 협상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부담은 있다. 반대로 조율을 건너뛰면 이행할 수 없는 혜택을 먼저 약속하게 된다.
◇작은 합의도 값은 싸지 않다
NEXT가 제안하는 첫 협상 단위는 ‘일단 만나고 나중에 검증’하는 합의가 아니다. 대상과 확인 방법을 좁힌다. 한국이 줄 수 있는 조치와 미국·유엔의 결정이 필요한 조치를 나누고, 후자는 관련 당사자와 권한·조건을 미리 협의한다. 북한이 이를 받아들이리라는 전망이 아니다. 제안을 하려면 최소한 갖춰야 할 조건이다.
특정 핵물질 생산시설의 가동 중단을 논의한다고 하자. 순서는 대상 시설과 연결 공정의 범위를 합의하는 데서 시작한다. 이어 신고 내용과 운영 기록을 무엇으로 확인할지, 감시 장비와 현장 접근을 어떻게 허용할지, 설명되지 않는 징후가 나오면 어떤 절차로 다룰지를 정한다. 시설 하나의 정지를 확인하고 전체 생산이 멈췄다고 발표하는 것은 과장이다. 이 범위 구분은 핵물질 검증과 탄두 해체를 같은 절차로 다루지 않기 위해서도 쓰인다.
대가 쪽도 한꺼번에 영구 해제하기보다 기간·수량·용도를 묶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다만 ‘위반하면 제재를 되돌리면 된다’는 말은 위험을 가린다. 이미 넘어간 자금은 회수하기 어렵고, 새로 생긴 거래 관계는 되살아난 금지 조치에 저항한다. 어떤 제한을 되돌리는 데 국제적 합의가 다시 필요하다면, 그사이 바뀐 정치 환경이 복원을 막을 수도 있다.
그래서 협상안에는 풀어 줄 항목과 함께, 이행이 실패했을 때 아직 지급하지 않은 혜택을 어디까지 멈출 수 있는지가 들어간다. 위반을 누가 판단하고 어떤 소명 절차를 거치는지도 정해 둔다. 한쪽이 상대의 위반을 자의적으로 주장해 거래를 뒤집을 수 있다면 북한도 약속을 지킬 이유가 줄어든다. 검증은 양보를 받아 내는 도구이면서, 이행한 약속의 대가가 지급되도록 보장하는 장치다.
NEXT는 인도적 지원을 이 거래표에서 빼는 편이 옳다고 본다. 민간인의 치료와 생존을 매번 핵 협상의 대가로 묶으면 협상이 끊길 때 지원도 흔들린다. 지원의 전용을 막고 수혜자를 확인하는 조건은 붙인다. 그러나 주민의 곤궁을 비핵화 양보를 받아 내는 성과로 다루는 것은 NEXT가 받아들이지 않는 방식이다.
◇북한이 아무것도 내놓지 않는다면
가장 강한 반론은 절차가 정교하다고 거래가 생기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북한이 핵 보유에서 얻는 안전과 지위를 경제적 이익보다 무겁게 본다면 제재 완화는 충분한 대가가 아닐 수 있다. 다른 협력국에서 자원을 얻을 수 있다면 서방과 거래하려고 사찰을 받을 이유는 더 작아진다. 상대에게 핵을 포기할 의사가 있다는 전제는 기획의 출발점이 될 수 없다.
여기서 길은 두 갈래다. 첫째는 전면 포기를 당장 얻지 못하더라도 추가 생산이나 위기 행동의 일부를 제한하는 거래를 시험하는 길이다. 비용이 있다. 핵을 가진 상태가 오래 이어지고, 제한적 합의의 성과가 부풀려져 방어 준비가 느슨해질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이 받는 위협은 그대로인 채 미국 본토에 대한 위험만 줄이는 합의가 추진될 가능성도 계산에 넣게 된다. 둘째는 모든 문제를 한 번에 푸는 합의만 허용하는 길이다. 이 경우 협상이 없는 동안 늘어나는 위험을 떠안는다. 실제 비교 대상은 완벽한 비핵화와 불완전한 동결이 아니다. 실현 가능한 제한 조치와, 그 조치조차 없는 기간이다.
한국 정부가 먼저 할 일은 어느 조치가 한국의 위험을 얼마나 줄이는지 평가할 자료와 협상안을 만드는 것이다. 외교 당국은 줄 수 있는 조치를, 기술 전문가들은 확인 가능한 범위를, 국방 당국은 합의 뒤에도 남는 위협을 한 문서에 놓고 대조한다. 국회에는 필요한 예산과 지속 기간, 실패하면 멈출 범위를 설명한다. 북한에 줄 선물 목록이 아니라 한국이 받아들일 수 있는 거래의 한계선이다.
접근을 거부하거나 합의 범위의 활동을 확인할 수 없으면, 거기에 연결된 혜택을 주지 않는 선택지도 남겨 둔다. 작다고 좋은 합의는 아니다. 그렇다고 확인 가능한 변화가 있는데도 ‘완전한 해결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무조건 버리는 것도 NEXT의 판단과 다르다. 지금의 공개자료로 북한이 받아들일 교환 목록을 확정할 수는 없다. 한국이 먼저 정할 수 있는 것은 세 가지다. 합의가 반드시 제한할 위험, 확인할 수 없는 약속에는 치르지 않을 대가, 그리고 협상이 없어도 이어 갈 방어 준비다.
출처
[1] 백악관 보존 기록: 하노이 회담 후 기자회견, 2019.2.28.
[2] Daniel Wertz, US-DPRK Negotiations after Hanoi: Reconcilable Differences?, 2019.3.4.
[3] 이재명 대통령 제81차 유엔총회 기조연설, 현지 연설 2026.9.22, 원문 등록 9.23.
[4] IAEA 사무총장 이사회 모두발언, 2026.9.7.
[5] IAEA, GOV/2024/42–GC(68)/15, 문단 5.
[6] 미 국무부 역사실, Denuclearization and the Two Koreas, 1993–2001.
[7] 유엔 인도적 면제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