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U.S. Army, Spc. Justin Yarborough · Eighth Army assumption of command, Oct 23, 2025 (9367818).jpg · Public domain
주한미군 지상군을 지휘하는 조지프 힐버트 미8군사령관이 한반도 밖 위협에도 병력을 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 한 이메일 인터뷰에서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그는 주한미군이 한반도 위협에만 "근시안적으로 집중하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했다. 미8군은 "국가 지휘 당국이 필요로 하는 곳에 배치될 수 있도록 훈련하는 '글로벌 군대'의 일부"라고도 했다. SCMP 기사를 옮겨 실은 코리아타임스에 따르면, 그는 준비 태세를 대체로 특정 위협에 매이지 않는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주한미군을 한반도 밖 임무에도 쓸 수 있게 하는 것을 전략적 유연성이라고 부른다. 코리아타임스에 따르면 주한미군은 약 2만8500명이다. 이 병력과 그 기지가 다른 곳의 분쟁에 쓰이면, 한국이 원하지 않는 전쟁에 엮일 수 있느냐는 물음이 생긴다. 그런데 한미가 이 문제를 두고 함께 발표한 문장은 많지 않다. 살펴볼 것이 세 가지 있다. 합의된 문장, 이미 있었던 일, 그리고 아직 정하지 않은 것이다.
첫째로 합의된 문장은 2006년 1월 19일 워싱턴에서 나왔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낸 공동성명이다. 성명에서 한국은 미국의 세계 군사전략 변화의 논리를 이해하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존중한다고 했다. 미국은 그 이행에서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고 했다. 여기서 한국의 입장이란 한국민의 의지에 반해 한국이 동북아 지역 분쟁에 개입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성명은 한국의 이해와 미국의 존중을 한 단락에 함께 담았다.
지난해 11월 13일 백악관이 낸 한미 정상회담 공동 팩트시트는 2006년을 다시 꺼냈다. 팩트시트는 두 정상의 합의 내용을 항목별로 정리한 문서다. 양측은 "relevant understandings since 2006", 곧 2006년 이후의 관련 양해를 확인한다고 적었다. 어떤 양해인지는 팩트시트에 따로 적혀 있지 않다. 바로 앞에는 북한을 포함해 동맹을 겨누는 모든 역내 위협에 맞서 미국의 재래식 억제 태세를 강화한다는 문장이 있다. 그보다 앞선 항목에서 한국은 북한에 맞선 연합 재래식 방위를 이끄는 데 필요한 능력을 키우는 노력을 서두르겠다고 약속했다.
이 팩트시트보다 석 달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유연성 요구에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뉴시스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지난해 8월 미국으로 가는 전용기 안에서 이렇게 말했다. "유연화에 대한 요구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또 우리 입장에서는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문제." 같은 자리에서 그는 주한미군의 "미래형 전략화"는 한국도 필요하다고 보지만, 양측이 쓰는 단어의 뜻이 조금씩 다르다고 했다. 주한미군의 역할을 다시 짜는 논의 자체는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도 주한미군의 한반도 밖 임무를 명시하지 않는다. 조약에서 한국은 미군을 한국 영토와 그 주변에 배치할 권리를 미국에 주고, 그 배치는 상호 합의로 정한다. 조약이 정한 공동 대처의 대상은 태평양 지역에서 두 나라가 관할하는 영토가 무력 공격을 받는 경우다. 한국에 있는 미군이 그 밖의 분쟁에서 어떤 임무를 맡을 수 있는지는 조약에 따로 적혀 있지 않다.
둘째로 이미 있었던 일을 보면, 주한미군 부대가 한반도 밖으로 나간 사례가 있다. 2004년 5월 17일 미 국방부의 기자 대상 배경 브리핑에서 한 당국자가 계획 하나를 밝혔다. 미 2사단 2여단 약 3600명을 1년 동안 이라크로 돌리는 계획이고, 한국에 이를 통보하는 절차를 마쳤다는 것이다. 그는 한반도와 역내의 능력이 전혀 줄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미국의 이란 핵시설 공습 때도 요격미사일 체계인 패트리엇 2개 포대가 중동에 배치됐다가 10월 돌아왔다.
이런 이동을 두고 한국 정부는 말을 아껴 왔다. 올해 3월 미국과 이란의 무력 충돌 속에 주한미군 전력의 중동 차출 관측이 나오자 정빛나 국방부 대변인은 이렇게 말했다. "주한미군 전력 운용과 관련해 정부가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러면서 미군과 한국 측 사이에 "상시로 상호 간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2004년에는 미국이 이라크 순환 배치 의도를 한국에 통보했고, 올해 국방부는 상시 소통이 있다고만 밝혔다.
2006년 성명의 단서는 동북아 지역 분쟁에 걸려 있다. 이라크와 중동은 동북아가 아니어서 이 단서가 걸리는 일이 아니었다. 보도된 힐버트 사령관의 말에는 지역 이름이 나오지 않지만, 연합뉴스와 경향신문은 대만해협 유사시를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했다. 대만해협 유사시는 대만을 둘러싼 무력 충돌을 말한다. 연합뉴스는 미국이 1월에 낸 국방전략도 함께 들었다. 이 문서는 한국이 미국의 제한적 지원 아래 대북 억제의 주된 책임을 질 수 있다고 적었다. 일본에서 대만을 거쳐 필리핀으로 이어지는 선의 방어를 강화한다는 방침도 담았다. 대만해협이 성명이 말한 동북아에 든다면, 이 단서가 실제로 걸리는 경우가 된다.
셋째로 정하지 않은 것은 2006년 성명의 단서 자체에 있다. 하나는 한국민의 의지를 누가, 어떤 절차로 확인하는지다. 성명에는 그 절차가 없다. 다른 하나는 개입의 범위다. 미군 병력이 한국 기지를 떠나는 것만 개입인지, 한국이 그 작전을 뒷받침하는 것도 개입인지 성명은 가르지 않는다. 성명이 말한 동북아가 어디까지인지도 적혀 있지 않다.
개입의 범위를 두고는 이미 구체적인 구상이 나와 있다. 주한미군 전체를 지휘하는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은 12일 워싱턴 미 육군협회 행사에서 '권역 지속지원 거점' 구상을 설명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그는 한국의 방위산업 생산 역량을 거론하며, 이 구상이 그런 생산 수단을 해당 작전 지역으로 가져오는 것이라고 했다. 같은 기사에는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 라미 김 석좌연구원의 전망도 실렸다. 분쟁이 길어지면 한국 방위산업이 미국의 무기 재고를 채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지원이 성명이 말한 개입에 드는지는 2006년 성명도, 지난해 팩트시트도 밝히지 않는다.
반론은 힐버트 사령관의 말이 파병 예고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미8군이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른 방위 공약 이행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 국방부 당국자도 연합뉴스의 질의에 조약에 따른 한국 방어 공약을 다시 밝혔다고 코리아중앙데일리가 전했다. 보도된 그의 말에 파병 지역이나 시점이 없다는 점에서 이 반론은 사실과 맞는다. 그러나 한국 방어와 역내 투입이 한꺼번에 필요해질 때 어느 쪽이 먼저인지는 2006년 성명에도, 지난해 팩트시트에도 없다.
한국의 입장을 담은 문장은 2006년 성명의 단서 한 줄이다. 한국민의 의지에 반해 동북아 지역 분쟁에 개입되지 않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팩트시트가 약속한 것은 양측의 긴밀한 협의와 정상에게 하는 이행 상황 보고다. 한국민의 의지를 누가 어떤 절차로 확인하는지는 그 약속에도 들어 있지 않다.
출처 10건 펼치기
정부·국회·국제기구·법령 2건
- 미 국무부, 한미 전략대화 출범 공동성명(전략적 유연성 문안), 2006.1.19.
- 백악관, 한미 정상회담 공동 팩트시트, 2025.11.13(미국 시각).
언론 보도와 그 밖의 자료 8건
- 연합뉴스, 미8군사령관 SCMP 인터뷰 발언, 미 국방전략, 브런슨 사령관 미 육군협회 발언, 2026.10.22.
- 코리아타임스(SCMP 전재), 힐버트 사령관 인터뷰와 주한미군 규모, 2026.10.22.
- 경향신문, 미8군사령관 발언 보도, 2026.10.22.
- 코리아중앙데일리, 미 국방부 당국자의 한국 방어 공약 재확인, 2026.10.22.
- 뉴시스, 이재명 대통령 전용기 기내 간담회, 2025.8.25.
- 한미상호방위조약 영문(예일대 아발론 프로젝트), 1953.10.1 서명.
- 미 국방부 배경 브리핑 녹취(글로벌시큐리티 보관본), 2사단 2여단 이라크 이동, 2004.5.17.
- 경향신문, 주한미군 전력 중동 투입 관측과 국방부 대변인 브리핑, 2026.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