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세종청사. 2015년 3월 19일 촬영된 자료사진이다.
정부세종청사. 2015년 3월 19일 촬영된 자료사진이다.
사진: Minseong Kim · Government Complex Sejong (N).jpg · CC BY-SA 4.0

정부는 8월 25일 국무회의에서 32개 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면제했다. 국회예산정책처(예정처) 집계로 이 가운데 26개 사업이 일주일 뒤 내년 예산안에 실렸고, 내년 예산 7조9839억 원을 받았다. 예타는 큰 나랏돈 사업의 경제성과 정책 효과를 미리 따지는 절차로, 총사업비 500억 원 이상인 새 사업이 대상이다. 이번 면제의 사유는 '국가 정책적으로 추진이 필요한 사업'이었다. 법은 이 사유로 면제한 사업에 사업계획이 적정한지 따로 검토하게 했다. 그 검토는 일주일 안에 이뤄졌을까?

26개 사업은 더 큰 면제 목록의 일부다. 예정처 보고서에 따르면 내년 예산안에 첨부된 예타 면제 사업은 모두 72건이다. 총사업비는 138조2564억 원으로, 올해 예산안에 첨부된 면제 사업 총사업비의 8.1배다. 다만 이는 여러 해 동안 쓸 돈의 합이다. 내년 예산은 10조4220억 원이다. 이 가운데 25건은 정부가 새로 만드는 미래대응기금의 사업이고, 총사업비는 109조6995억 원이다.

면제 사업비의 93.6%는 한 가지 사유에서 나왔다. 국가재정법이 정한 열 가지 면제 사유 가운데 '국가 정책적으로 추진이 필요한 사업'이다. 이 사유로 면제된 사업은 46건, 129조4344억 원이다. 2016년부터 2025년까지 10년 동안 같은 사유로 면제된 사업비 합계는 119조2905억 원이었다. 내년 예산안 한 번에 붙은 몫이 이 10년 치보다 많다.

이 사유는 다른 사유보다 요건이 까다롭다. 사업 목적과 규모, 추진 방안을 담은 구체적인 사업계획이 있어야 하고, 국무회의를 거쳐야 한다. 2020년 3월에는 법을 고쳐 단계를 하나 더 붙였다. 기획예산처장관이 예타에 준하는 방식으로 사업계획의 적정성을 검토하는 단계다. 재원 조달 방안과 비용·편익을 분석하고, 그 결과를 예산 편성에 반영한다. 다만 조문에는 검토를 언제까지 마칠지가 적혀 있지 않다.

예정처는 26개 사업이 이 검토의 결과를 반영하지 않은 채 예산안에 들어갔다고 봤다. 근거는 걸린 시간이다. 2021~2025년 같은 사유로 면제된 사업 18건의 적정성 검토에는 평균 8개월이 걸렸다. 이번 26건은 면제 의결 7일 만에 예산안에 편성됐다. 예정처는 이를 "적정성 검토에 필요한 기간을 고려하지 않고 예산안 편성 직전에 면제 절차를 진행한 데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적었다.

사업별 분석에도 같은 사례가 나온다. 내년 1조5000억 원이 편성된 서남권 반도체클러스터 통합재정지원은 적정성 검토를 거치지 않았다. 다변화원유 정제시설 고도화 사업은 9월 현재 검토가 실시되지 않은 상태로 예산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검토 결과를 반영할 다음 해 예산이 아예 없는 사업도 있다. 석유가격 안정화 지원 1조4497억 원은 사업기간이 내년 한 해이고, 전액이 내년 예산안에 있다. 사립대 이공계 실험실습·연구시설 지원 6000억 원도 마찬가지다. 예정처는 검토가 내년 중 끝나도 결과를 예산에 반영할 여지가 없다고 봤다.

정부의 설명은 다르다. 한국일보에 따르면 정부는 속도감 있는 정책 추진을 위해 면제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면제 뒤에도 적정성 검토로 적정 사업 규모와 효율적 대안을 검증한다고 설명한다. 예정처 보고서에 실린 기획예산처 입장도 있다. 소관 부처가 관계기관 협의와 전문가 검토를 거쳐 사업계획을 마련하고, 국무회의 의결도 거친다는 것이다. 산업통상부는 반도체클러스터 시행계획을 적정성 검토가 끝난 뒤 그 결과를 반영해 확정하겠다고 했다.

큰 면제가 이번 정부에서 처음 나온 것도 아니다. 예정처 표에 따르면 같은 사유의 면제 사업비는 문재인 정부 때인 2019년 25조89억 원이었다. 2020년에도 24조9151억 원이었다. 이 표는 면제를 요구한 시점의 금액으로 집계해 예산안 첨부서류와 그대로 비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예정처는 내년 예산안의 규모를 두고 "이례적으로 확대된 것"으로 판단했다.

국회가 검토 여부를 확인할 길도 좁다. 예타는 결과를 요약해 국회에 내게 돼 있지만, 적정성 검토는 결과를 국회에 낼 의무가 없다. 예정처에 따르면 올해 기획예산처는 검토 진행 상황에 관한 자료 제출에 협조하지 않았다.

적정성 검토 전에 편성한 예산이 쓰이지 못하거나 깎인 사례도 있다. 예정처에 따르면 '미래 판기술 프로젝트'는 적정성 검토가 늦어져 지난해 예산의 84%를 쓰지 못했다. 전공의 수련환경 혁신 지원은 검토 결과 총사업비가 39.6% 줄었다.

국회는 12월 2일까지 내년 예산안을 의결한다. 26개 사업 가운데 지금까지 적정성 검토를 마친 사업은 몇 개인가? 한 해로 끝나는 사업은 검토 결과를 어디에 반영하는가? 예정처 분석대로라면 면제 일주일 만에 예산안에 실린 7조9839억 원은, 편성 당시 적정성 검토의 결과를 반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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