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파주 도라산역의 '평양방면' 승강장 안내판. 2013년 1월 촬영된 자료사진이다.
사진: Christian140 (User:Christian140) · File:Dorasan Station - To Pyongyang.jpg · CC BY-SA 4.0

통일부는 내년 남북 경협 융자 예산을 세 배 넘게 늘렸다. 국회예산정책처(예정처)의 예산안 분석에 따르면 경협기반 융자 사업의 내년 계획액은 1994억 원이다. 올해 590억 원보다 237.7% 많다. 그런데 예정처에 따르면 이 사업은 2023년부터 분석을 낸 10월 말까지 한 푼도 쓰이지 않았다. 이 돈은 남북협력기금에서 나가고, 기금 수입의 절반 넘게는 빌려 온 돈이다. 내년 기금 수입 1조1820억 원 가운데 7347억 원을 정부의 다른 기금인 공공자금관리기금에서 빌린다. 쓰지 못한 사업에 왜 돈을 더 얹었을까?

경협기반 융자는 남북 경협 사업이 다시 시작될 때를 위해 마련해 두는 돈이다. 뉴시스에 따르면 남북이 합의한 철도·도로 같은 사업이 대상이다. 이런 사업이 재개되면 필요한 자금을 빌려준다. 남북협력기금은 남북 교류에 쓰려고 통일부가 따로 관리하는 기금이다.

융자 사업은 2023년부터 해마다 예산을 잡고도 한 푼도 집행하지 않았다. 예정처 자료를 보면 계획액은 2023년 1800억 원, 2024년 990억 원이었다. 지난해에는 590억 원 가운데 308억 원을 중간에 깎았고, 남은 돈도 쓰지 않았다. 올해 590억 원도 예정처 분석 시점까지 쓰이지 않았다. 예정처는 그 이유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 남북관계 경색을 들었다.

돌려받지 않고 지원하는 무상 사업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일보가 보도한 국민의힘 자료에 따르면 경협기반 무상사업의 지난해 집행률은 8%였다. 올해는 7월 말까지 예산의 1.34%를 썼다. 무상 사업 예산은 내년에 줄었지만 융자가 크게 늘었다. 두 항목을 합친 경협기반 예산은 3871억9700만 원으로 올해보다 38.3% 많다.

이 3871억 원 가운데 90.7%는 세부 내역이 공개되지 않는다. 한국일보에 따르면 쓸 곳을 미리 밝히지 않는 기타경제협력사업비 1515억 원과 융자 1994억 원 전액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내역이 알려지면 "남북 협상 전략이 공개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통일부는 대화 재개에 대비한 예산이라고 설명한다. 통일부 관계자는 한국일보에 "협의가 재개되면 차질 없이 사업을 진행하기 위한 예산"이라고 했다. 편성액을 "미리 현금으로 확보해 쌓아두지 않고" 사업이 진행될 때 조달한다고도 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기금 총액을 지키려고 융자를 늘렸다고도 했다. 내년 예산에서 구호지원, 민생협력지원, 무상 경협기반 사업은 집행 부진으로 각각 약 15% 깎였다. 미래한국이 옮긴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통일부 당국자는 이렇게 말했다. "남북협력기금 총액이 삭감되면 정부의 의지 표현에 문제가 있을 수 있어 다른 사업(경협기반 융자사업)을 확대 편성해 총액을 유지했다."

비공개와 쓰지 못한 융자 예산은 이재명 정부에서 처음 생긴 일이 아니다. 서울평양뉴스에 따르면 2018년 조명균 당시 통일부 장관도 협상을 이유로 내역을 밝히지 않았다. 뉴스핌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는 2018년 융자 예산 200억 원을 한 푼도 쓰지 못했다. 그러고도 2019년 예산을 1197억 원으로 늘렸다. 집행 실적이 없는 2023년의 1800억 원은 윤석열 정부 때 짠 예산이다.

예정처는 내년에도 융자가 집행될 가능성을 낮게 봤다. 예정처에 따르면 융자로 지원할 사업은 공개 자료에 나와 있지 않다. 남북 당국이 경협 협의를 다시 시작했다는 내용도 없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도 그대로다. 그래서 예정처는 융자 수요가 실제로 생기면 그때 기금운용계획을 바꾸는 방안도 들었다.

쓸 수 있는 돈은 이미 기금에 쌓여 있다. 예정처 결산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말 남북협력기금의 여유자금은 2092억 원이다. 최근 3년 동안 한 해 평균 쓴 사업비와 기금운영비의 7.9배다. 예정처는 사업이 재개돼도 이 여유자금으로 사업비 일부를 댈 수 있다고 봤다.

국민의힘은 융자 증액분 1403억 원 전액과 기타경제협력사업비 절반을 깎자고 요구할 계획이다. 두 금액을 합치면 2161억6900만 원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한국일보에 "낭비성 예산"이라고 했다.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3일 국민의힘의 30조 원 삭감 예고 전체를 두고 "반대에는 근거를, 삭감에는 대안을 제시하라"고 했다.

국회는 12월 2일까지 내년 예산안을 의결한다. 내년에 융자로 지원할 사업은 무엇이고, 북한과는 어디까지 협의했나? 여유자금 2092억 원으로는 왜 모자라는가? 통일부가 든 이유는 대화 재개 대비와 기금 총액이다. 그러나 융자로 지원할 사업은 공개되지 않았고, 여유자금으로 모자라는 까닭은 예정처 분석에도 나와 있지 않다. 이 두 이유만으로는 세 해 넘게 한 푼도 쓰지 않은 사업을 세 배로 늘린 근거가 모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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