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OSeveno · International Criminal Court building (2019) in The Hague 01.jpg · CC BY-SA 3.0
이재명 대통령과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가 29일 청와대에서 낸 공동성명에 국제재판소를 지키겠다는 문구가 들어갔다. 미국이 9일 국제형사재판소(ICC)라는 기관 전체를 제재 대상으로 지정한 뒤 나온 문서다. 국제형사재판소는 집단살해나 전쟁범죄 같은 중대 범죄를 저지른 개인을 처벌한다. 2025년 기준으로 한국은 이 재판소에 분담금을 일곱째로 많이 낸 회원국이다. 북한의 인권 범죄를 따질 곳으로도 이 재판소를 들어 왔다. 이 문구를 미국 제재에 맞선 정부의 첫 입장으로 읽을 수 있을까.
공동성명의 문구는 국제형사재판소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다. 독일 정부가 올린 공동성명 영문본에서 해당 문장은 이렇다. 두 나라는 유엔 헌장을 중심으로 여러 나라가 함께 만든 국제 체제를 지키겠다고 했다. 그 체제 뒤에 "국제재판소를 포함해"(including international courts)라는 말이 붙었다. 국제재판소라는 말에는 나라 사이 분쟁을 다루는 국제사법재판소 같은 곳도 들어갈 수 있다. 세 쪽짜리 성명 어디에도 국제형사재판소, 제재, 미국이라는 낱말은 없다.
한국일보는 이 문구를 미국의 ICC 제재 동참 요청과 거리를 둔 것으로 보도했다. 한국일보에 따르면 미국은 동맹국들에 제재에 동참하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성명 본문이 아니라 보도의 판단이다. 청와대 서면브리핑도 이 대목을 "규칙을 기반으로 한 국제 질서의 수호"로만 적었다.
한국이 들어 있는 회원국 대표 기구는 이미 제재 철회를 요구했다. 제재 다음 날인 10일 국제형사재판소 당사국총회 의장단이 성명을 냈다. 의장단은 회원국 총회가 뽑은 의장국, 부의장국 2곳, 위원국 18곳으로 꾸려진다. 성명은 제재가 유감이라며 "즉각 철회"(immediate revocation)를 요구하는 내용이다. 2023년 12월부터 3년 임기를 맡은 지금 의장단 명단에 한국이 위원국으로 들어 있다. 다만 이 성명은 나라 이름 없이 의장단 명의로 나왔다.
외교부 보도자료에는 제재를 두고 한국 정부가 자기 이름으로 낸 성명이 아직 없다. 30일 외교부 보도자료를 제목에 '국제형사'를 넣어 검색했다. 가장 최근 자료는 2025년 9월의 재판소장 면담 결과다. 한국일보는 11일 정부가 '우려' 입장을 내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 신문에 "우리 입장은 미국과 똑같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검토의 결과는 지금까지 발표되지 않았다.
독일의 입장은 이보다 분명하다. 9일에는 독일·일본·영국 등 9개국 외무장관이 제재에 반대하는 공동성명을 냈다. 공개된 서명국에 한국은 없었다. 시사주간지 타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유엔총회 연설에서 회원국들에 재판소 탈퇴를 요구했다. 요한 바데풀 독일 외무장관은 연설 직후 "물론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성명에 든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도 아직 약속에 머물러 있다. 이 협정은 두 나라 군이 주고받는 비밀 정보를 어떻게 보호할지 정한다. 두 나라 정상은 2023년 5월 이 협정을 서둘러 맺기로 합의했다. 이번 성명은 체결 의지를 "다시 밝힌다"(reiterate)고 적었다. 두 나라는 이날 관계를 '강화된 전략적 동반자'로 올렸다. 그러나 이 협정은 3년 넘게 서명되지 않았다.
정부가 국제형사재판소를 두고 입장을 밝힐 다음 자리는 헤이그다. 당사국총회는 11월 30일부터 12월 7일까지 열린다. 원래 뉴욕에서 열 예정이었다. 의장단이 장소를 옮긴 까닭은 참석이 제한될 수 있다는 우려다. 제재받는 재판소 선출직과 일부 대표단의 비자 문제를 들었다. 외교부 국제법률국장은 지난해 이 총회에서 "한국은 계속 재판소 편에 설 것"이라고 말했다.
총회 뒤에는 분담금이 걸려 있다. 미국은 제재와 함께 예외를 두었다. 재판소 운영을 이어 가는 데 필요한 거래는 내년 4월 6일까지 허가되고, 회원국의 분담금 납부도 그 안에 든다. 그 뒤의 납부는 이 허가 문서에 정해져 있지 않다.
정부가 답할 물음은 두 가지다. 독일과 함께 적은 '국제재판소'에 국제형사재판소가 들어가는가. 들어간다면 헤이그 총회에서 지난해의 말을 한국의 이름으로 되풀이할 것인가.
공동성명의 '국제재판소' 문구는 ICC 제재에 맞선 정부의 첫 입장으로 보기 어렵다. 제재를 두고 따로 성명을 내지 않은 정부가 독일과 함께 적은 일반 원칙이다.
출처 14건 펼치기
정부·국회·국제기구·법령 7건
- 청와대, 한-독일 정상회담 결과 서면브리핑, 2026.10.29.
- 국제형사재판소, 당사국총회 의장단 제재 유감 성명, 2026.10.10.
- 국제형사재판소 당사국총회, 의장단 구성(2023.12.14. 임기 시작, 3년), 2026.10.30. 확인.
- 외교부 보도자료 목록(제목 '국제형사' 검색, 최근 자료는 2025.9.23. 「김진아 2차관, 국제형사재판소(ICC) 재판소장 면담 결과」), 2026.10.30. 확인.
- 국제형사재판소, 제25차 당사국총회 헤이그 개최, 2026.09.29.
-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 일반면허 13호(회원국의 재판소 납부 포함, 2027년 4월 7일 0시 1분 동부시간까지), 2026.10.09.
- 제24차 당사국총회, 대한민국 외교부 국제법률국장 발언문, 2025.12.02.
언론 보도와 그 밖의 자료 7건
- 독일 연방정부, 한독 공동성명 영문본(Joint Statement between the Republic of Korea and the Federal Republic of Germany), 2026.10.29.
- 한국일보, 한독 정상회담 '국제재판소 수호'와 미국의 ICC 제재 동참 요청, 2026.10.29.
- 한국일보, 정부의 ICC 제재 '우려' 표명 검토, 2026.10.11.
- 타임(TIME), 트럼프 대통령 유엔총회 연설의 ICC 탈퇴 요구와 바데풀 독일 외무장관 발언, 2026.10.29.
- 서울신문, 2023년 한독 정상회담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 합의, 2023.05.21.
- 영국 외교부 게재, 9개국 외무장관 공동성명(호주·캐나다·덴마크·독일·프랑스·이탈리아·일본·네덜란드·영국), 2026.10.09.
- NEXT, 미국 제재 뒤 정부 공식 입장 부재(2025년 분담금 971만 유로로 125개 회원국 중 일곱째, 유엔 북한 인권 결의), 2026.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