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정부세종청사의 공정거래위원회 건물. 2014년 12월 촬영된 자료사진이다.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의 공정거래위원회 건물. 2014년 12월 촬영된 자료사진이다.
사진: Minseong Kim · Korea Fair Trade Commission(South Korea).JPG · CC BY-SA 4.0

어떤 회사가 원재료값이 오를 때는 값을 바로 올렸다. 그런데 원재료값이 내린 뒤에도 정당한 이유 없이 값을 그대로 둔다면 제재할 수 있을까. 공정거래위원회는 6일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런 행위도 독과점 사업자의 가격 남용으로 볼 수 있게 하는 내용이다. 소비자가 매일 사는 설탕도 상위 세 회사가 시장 대부분을 차지한 물건이다.

지금 시행령은 값을 바꾸는 행위만 다룬다. 원가나 수급의 변동에 비해 값을 "현저하게 상승시키거나 근소하게 하락시키는" 경우다. 법은 값을 부당하게 "결정ㆍ유지 또는 변경"하는 행위를 모두 금지하는데, 시행령은 그 가운데 변경만 적었다. 공정위는 보도자료에서 '현저성'을 입증하기가 너무 어려워 이 조항이 "사실상 사문화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가격 남용 조항이 쓰인 일은 드물다. 중앙일보가 전한 공정위 설명으로는 지금까지 이 조항을 적용한 사례가 두 건이다. 처음은 1992년이다. 해태·롯데·크라운제과가 과자값은 그대로 두고 양을 최고 20.7% 줄였다가 시정명령을 받았다. 원가가 내린 뒤 값을 유지한 사건은 아니었다. 연합뉴스가 전한 공정위 관계자 말로는 원가가 오르내릴 때의 가격 행위로 독과점 사업자를 제재한 사례가 없었다.

개정안은 가격 남용의 범위를 넓히고 문턱을 낮춘다. 정당한 이유 없이 수급이나 비용의 변동에 비해 값을 "근소하게 하락 또는 유지"하는 행위가 새로 들어간다. 또 해외보다 국내에서 값을 높게 매기는 행위도 대상이다. 문턱은 '현저하게'를 '상당히'로 바꿔 낮춘다. 홍수진 공정위 디지털공정거래정책과장은 KTV 인터뷰에서 대상이 될 수 있는 제품으로 "석유, 철강 등"을 들었다.

대상은 독과점 사업자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한 회사의 점유율이 50% 이상이면 시장을 지배하는 사업자로 추정한다. 상위 세 회사의 점유율 합계가 75% 이상이면 그 세 회사도 그렇게 추정한다. 다만 연간 매출액이 80억 원에 못 미치는 사업자는 빠진다.

이런 독과점 구조가 굳은 산업은 적지 않다. 공정위의 시장구조 조사에서 2019~2023년 내내 이 기준에 든 광업·제조업 산업은 50개다. 설탕 제조업은 상위 3사의 출하액 점유율이 91.9%였다. 다만 이 조사는 통계용 산업 분류로 센 것이다. 실제 사건에서는 공정위가 품목과 지역을 따져 시장을 따로 정한다.

담합 사건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공정위 관계자에 따르면 공정위는 원가가 오르내릴 때의 가격 행위로 여러 사업자를 제재했다. 올해 공정위는 설탕 3사 담합에 과징금 4083억 원을 매겼다. 담합은 회사끼리 값을 합의했다는 것을 밝혀야 한다. 반면 개정안은 한 회사가 혼자 값을 유지한 경우까지 다룬다.

'상당히'가 얼마인지는 개정안에 숫자로 적혀 있지 않다. 그래서 적정한 값인지는 공정위가 사건마다 판단하게 된다. 매일경제는 사설에서 비용이 얼마인지, 어느 시장과 비교할지를 "결국 공정위가 정한다"고 썼다. 한국경제도 사설에서 반론을 폈다. 기업이 원가가 오를 때 값을 묶어 부담을 떠안았다가 원가가 내릴 때 만회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같은 시도가 한 번 막힌 적도 있다. 이투데이 보도에 따르면 2007년 규제개혁위원회는 가격 남용 요건을 넓히려던 공정위 시행령 개정안에 철회를 권고했다. 규개위는 "시장경제의 근본 원리와 충돌하는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정위는 지나친 개입을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공정위 관계자는 중앙일보에 "법원에서도 상당성 요건을 엄격하게 판단한다"고 했다. 처음 매긴 값은 비용보다도, 비슷한 상품 값보다도 상당히 높아야 대상이 된다는 설명이다.

공정위가 답할 물음은 둘이다. 원가가 내린 뒤 얼마 동안 값을 그대로 두면 '유지'로 보는가. 비싸게 사 둔 재고나 장기 계약 원료처럼 원가가 늦게 내리는 사정은 정당한 이유로 인정하는가. 의견은 12월 16일까지 받고, 공정위는 내년 상반기에 개정을 마칠 계획이다.

'상당히'와 '정당한 이유'라는 문구만으로는 원가가 내린 뒤 값을 얼마나 내려야 제재를 피하는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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