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Gohsuke Takama · Korean National Police Agency Building02.jpg · CC BY 2.0
10월 13일 오후 5시 43분, 전북 경찰은 전주 덕진구에 사는 한 여성에게 안전 확인 전화를 걸었다. 경찰이 고위험 피해자로 분류해 매주 한 번 걸던 전화였고, 여성은 받지 않았다. 연합뉴스가 전한 전북경찰청 설명에 따르면 경찰은 그날 다시 연락하거나 집을 찾지 않았다. 여성은 다음 날 오후 5시께 지인의 신고로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별거 중이던 남편이 13일 오후 5시 30분부터 7시 사이에 범행한 것으로 보고, 14일 밤 살인 혐의로 남편을 긴급체포했다.
여성은 4월부터 남편 일로 경찰에 8차례 신고했고, 남편은 법원에서 접근 금지와 연락 금지를 받은 상태였다. 이재명 대통령은 15일 가족·연인처럼 아는 사람이 저지르는 관계성 범죄에 특단의 대책을 지시했다. 대통령은 "기존 대책에 혹시 빈틈이 없었는지부터 면밀히 점검해야 한다"고 했다. 가정폭력 112 신고는 매일 수백 건이다. 한국일보가 9월 27일 전한 양부남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의 경찰청 자료로, 명절이 아닌 평소의 가정폭력 112 신고는 올해 하루 평균 909건이다.
빈틈은 법에도 있고 법을 쓰는 방식에도 있다. 가정폭력처벌법이 스토킹처벌법보다 약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주 사건에서는 지금 법에 있던 수단을 신청하지 않은 판단과, 받지 않은 전화 뒤에 추가 확인이 없었던 경위도 함께 따져야 한다. 살펴볼 것이 세 가지 있다. 가정폭력처벌법의 빈칸, 신청하지 않은 전자장치, 받지 않은 전화다.
첫째로 가정폭력처벌법은 경찰 명령을 어겼을 때의 처벌, 유치 요건, 전자장치에서 스토킹처벌법보다 약하다. 가정폭력처벌법에서 경찰은 현장 조치에도 재발 우려가 있고 법원 결정을 기다릴 수 없을 만큼 급하면 퇴거와 접근 금지를 명할 수 있다. 정당한 이유 없이 이 긴급임시조치를 어기면 300만 원 이하 과태료다. 스토킹처벌법에서는 스토킹이 지속·반복될 우려가 있고 예방을 위해 급하면 경찰이 접근·연락 금지를 명할 수 있다. 이 긴급응급조치를 어기면 1년 이하 징역이나 1천만 원 이하 벌금이다. 두 경우 모두 법원이 뒤이어 결정이나 승인을 하지 않으면 제재 대상에서 빠진다.
유치 요건도 다르다. 유치는 가해자를 유치장이나 구치소에 가두는 조치다. 가정폭력 사건에서 수사 단계에 유치를 청구하려면, 법원이 앞서 내린 접근 금지 등을 어겨 재발 우려가 있어야 한다. 스토킹 사건에는 이 요건이 없다. 스토킹 가해자에게는 2024년 1월부터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도 명할 수 있다. 경찰은 15일 청와대 회의에 이 차이를 스토킹 수준으로 맞추는 방안을 보고했다. 경찰 명령 위반을 형사처벌하고, 이전 위반이 없어도 유치를 신청하게 하고, 가정폭력 가해자에게도 전자장치를 달게 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내용이다.
같은 방향의 세 가지 내용은 이미 국회 법안에 담겨 있다. 이만희 의원 등 10명이 2월 19일 낸 가정폭력처벌법 개정안에 셋이 모두 들어 있고, 경찰이 법원에 직접 청구하는 길도 열었다. 의안 진행 정보에는 다음 날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된 것으로 나온다. 경찰 명령 위반을 처벌하자는 같은 의원의 2024년 7월 법안은 그해 11월 소위원회에 회부됐다.
둘째로 전주 사건에는 지금 법으로도 신청할 수 있는 전자장치가 있었다. 경찰은 9월 남편이 아내에게 비난성 문자를 수십 통 보내자 스토킹으로 입건했고, 법원은 서면 경고와 접근·연락 금지를 결정했다. 스토킹처벌법에서는 경찰이 검사에게 전자장치 부착을 신청하고, 검사가 법원에 청구한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경찰은 남편의 재범 위험성이 낮다고 보고 전자장치 같은 신체 구속 조치를 신청하지 않았다. 국민일보가 전한 경찰 설명은 살해 협박이나 물리적 폭행이 없었고, 남편이 고령이며, 주로 문자로 스토킹했다는 것이다.
이 판단은 같은 사건을 고위험으로 분류한 판단과 함께 설명돼야 한다. 경찰은 9월 스토킹 입건 무렵 이 사건을 고위험으로 분류해 매주 전화를 걸었다. 3월 남양주에서 접근 금지를 받던 스토킹 가해자가 살인 혐의로 구속된 뒤, 경찰청은 전국 점검을 벌였다. 헤럴드경제에 따르면 유재성 당시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점검에서 "고위험으로 확인된 사안은 최대한 신속하게 현행 제도상 가능한 범위 내에서 가장 강력한 조치를 하라"고 지시했다. 두 판단이 어떤 기준으로 함께 나왔는지는 전북경찰청이 밝힐 몫이다.
경찰이 신청한 뒤에도 검사와 법원을 거친다. 아시아투데이는 국회 의원실이 받은 경찰청 자료를 전했다. 스토킹 가해자 전자장치를 경찰이 신청한 건수는 2024년 한 해 325건이었고, 올해는 1~8월에만 2,181건이다. 같은 올해 잠정 통계에서 검사 청구는 1,626건, 법원의 부착 결정은 757건이었다.
셋째로 받지 않은 전화 뒤의 후속 조치에는 구체적인 매뉴얼이 없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경찰청은 피해자 모니터링을 규정하면서도, 연락이 닿지 않을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매뉴얼로 정하지 않았다. 전북경찰청 관계자는 보통 간격을 두고 다시 전화하거나 문자를 보낸다며 "담당자가 다음날 비번이라 이를 하지 못했다"고 했다. 다만 전화는 경찰이 추정한 범행 시간 안에 걸렸다. 그때 이미 범행이 진행 중이었을 수 있어, 다시 걸었다면 결과가 달랐으리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분명한 것은 이 확인 방식이 피해자가 전화를 받을 수 있어야 작동한다는 점이다.
가장 강한 반론은 경찰을 한 통의 전화로 탓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부 교수는 연합뉴스에 "매뉴얼 부재만으로 경찰이 피해자 보호를 소홀히 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한정된 경찰 인력상 모니터링 강화만을 요구하기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경찰은 하루 두 번 집 주변을 순찰했고, 스마트워치를 권했지만 피해자가 동의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반론대로 전화와 순찰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면, 가해자 쪽 조치를 언제 신청하는지의 기준을 함께 살펴야 한다. 하준경 청와대 정책실장도 15일 범죄대책회의에서 가해자 제재와 관리·예방 활동을 우선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구체적인 대책을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마련하겠다고 했다. 그 협의와 별개로 국회와 경찰이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법제사법위원회는 2024년부터 쌓인 가정폭력처벌법 개정안을 소위원회에서 심사해야 한다. 9월 1일 시작한 정기국회의 법정 최장 회기 100일을 세면 12월 9일이다. 경찰은 고위험 분류와 낮은 재범 위험 판단이 함께 나온 경위를 밝혀야 한다. 고위험 피해자가 전화를 받지 않을 때 누가 언제까지 무엇을 하는지도 매뉴얼로 내놓아야 한다. 10월 13일 오후 5시 43분의 전화 뒤에 경찰의 추가 연락이나 방문은 없었고, 여성은 다음 날 오후에야 발견됐다.
출처 16건 펼치기
정부·국회·국제기구·법령 7건
- 국가법령정보센터,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응급조치·긴급임시조치·임시조치·벌칙·과태료), 2026.10.16 조회.
- 국가법령정보센터,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긴급응급조치·잠정조치·벌칙, 전자장치 2024.1.12 시행), 2026.10.16 조회.
- 법무부, 전자감독 피해자 보호 시스템 강화(스토커 위치정보 피해자 알림), 2023.11.20.
- 국민참여입법센터, 가정폭력처벌법 일부개정법률안(이만희 의원 등 10인, 제2216887호), 2026.2.19 발의.
- 국민참여입법센터, 가정폭력처벌법 일부개정법률안(이만희 의원 등 11인, 제2202212호), 2024.7.24 발의.
- 국가법령정보센터, 국회법(정기회 9월 1일 집회), 2026.10.16 조회.
- 국가법령정보센터, 대한민국헌법 제47조(정기회 회기 100일 상한), 2026.10.16 조회.
언론 보도와 그 밖의 자료 9건
- 연합뉴스, 전주 고위험 스토킹 피해자 사망과 경찰 모니터링 매뉴얼(전북경찰청 설명), 2026.10.15.
-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 수석보좌관회의 관계성·무차별 범죄 대책 지시, 2026.10.15.
- 연합뉴스, 청와대 관계부처 합동 범죄대책회의(하준경 정책실장), 2026.10.15.
- 연합뉴스, 경찰청의 가정폭력 가해자 전자장치·긴급임시조치 처벌 방안 보고, 2026.10.15.
- 국민일보, 전주 사건 신고 경위와 경찰의 전자장치 미신청 설명, 2026.10.15.
- 경향신문, 전주 사건 경찰의 잠정조치·순찰·스마트워치 경위, 2026.10.15.
- 한국일보, 양부남 의원실 경찰청 자료 가정폭력 112 신고 일평균, 2026.9.27.
- 헤럴드경제, 경찰청 관계성 범죄 전수점검과 고위험 사안 조치 지시, 2026.3.20.
- 아시아투데이, 정춘생 의원실 경찰청 자료 스토킹 잠정조치 신청·결정 건수, 2026.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