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의 사무실 건물. 2020년 2월 18일 저녁 서울연구원이 촬영한 자료사진이다.
서울 종로의 사무실 건물. 2020년 2월 18일 저녁 서울연구원이 촬영한 자료사진이다.
사진: 서울연구원 · Night view of Downtown Seoul along Jongno Street in 2020.jpg · CC BY 4.0

2025년 2월 3일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이 반도체특별법 토론회를 열었다. 쟁점은 반도체 연구개발자를 주 52시간 상한에서 빼 줄지였다. 이재명 당시 대표는 고소득 전문가가 동의하면 몰아서 일하게 해 주자는 주장에 "할 말이 없더라"고 했다. 동의가 형식에 그칠 것이라는 노동계의 걱정에는 이렇게 답했다. "동의가 왜곡될 수 있다는 이유로 제도 자체를 막는 건 아니라고 본다."

그날 나온 고소득, 연구개발, 본인 동의라는 세 가지가 올해 보도된 정부 방안에도 들어 있다. 고용노동부는 7월 27일 국회 여당 의원들에게 메가특구 특별법의 노동 분야 방향을 보고했다. 메가특구는 정부가 전략산업을 키우려고 지정하는 성장거점이다. 세계일보와 연합뉴스 기사가 전한 내용은 이렇다. 노동자가 동의하면 소득 상위 3%인 관리자와 연구개발자에게 주 52시간 상한을 없앤다. 연장·야간·휴일 근로 수당 대신 '일반 수당'을 준다. 일반 수당을 어떻게 계산하는지는 보도에 나오지 않는다. 이 방안은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이라고도 불린다. 보수가 높은 관리·전문직의 연장근로수당을 면제하는 미국 제도에서 딴 이름이다.

상위 3%는 몇 사람의 일로 들리지만, 반도체 회사에서는 그렇지 않다. 노동부 조사 기준으로 소득 상위 3%는 연봉 1억 3,000만 원 이상이다. 경향신문이 보도한 근로복지공단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삼성전자 노동자의 56.4%가 이 금액보다 많이 받았다. 12만 8,848명 가운데 7만 2,708명이다. SK하이닉스는 이 비율이 82.4%였다. 직무는 따지지 않고 전체 직원의 연간 보수만 비교한 숫자다.

연봉 기준으로는 연구개발자만 골라낼 수도 없다. 전국삼성전자노조 수석부위원장은 경향신문에 "삼성전자는 일반 사무직과 개발 엔지니어의 기본 연봉이 동일"하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도 "개발직과 일반 사무직 간 연봉 격차는 없다"고 했다. 같은 보도에 따르면 9월 4일 당정협의에서 노동부는 상위 3% 안을, 산업통상부는 상위 7% 안을 냈다. 기준을 상위 7%로 넓히면 대상은 더 는다.

정부는 이 방안을 아직 확정하지 않았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9월 15일 브리핑에서 "정부 입장은 아직까지 확정된 바는 없습니다"라고 했다. 조문도 공개되지 않았다. 노동계와 경영계, 정부는 메가특구 특별법의 노동 특례를 놓고 사회적 대화를 열었다. 10월 8일에는 세 번째 실무회의를 했다. 연봉 기준을 넘는 사람이 이렇게 많으면, 실제로 누가 52시간 넘게 일할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동의로 갈린다. 그렇다면 회사가 동의를 요구할 때 거절할 수 있는지, 동의한 뒤에 물릴 수 있는지가 중요해진다.

살펴볼 것이 세 가지 있다. 동의하면 달라지는 것, 지금 있는 예외 제도, 그리고 다른 나라가 붙인 조건이다.

첫째는 동의하면 달라지는 것이다. 더 오래 일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받는 수당도 달라진다. 근로기준법은 연장근로를 시키면 평소 임금의 절반 이상을 더 주게 한다. 보도된 방안은 이렇게 더 주는 가산수당을 일반 수당으로 바꾼다. 한국노총은 7월 31일 성명에서 이 방안이 "법정수당을 박탈해 실질적인 임금삭감을 초래"한다고 했다. 반면 삼성전자는 9월 국회에 낸 답변서에서 "연구원과 직원들의 정당한 보상 체계를 보장하겠다"고 했다. 어느 말이 맞는지는 일반 수당의 계산 방식에 달렸고, 그 계산 방식은 정부가 답할 몫이다.

둘째는 지금 있는 예외 제도다. 주 52시간을 넘겨 일할 수 있는 특별연장근로는 지금도 있지만, 본인 동의만으로는 쓸 수 없다. 노동자의 동의에 더해 노동부 장관의 인가를 받아야 하고, 더 일한 시간에는 법에 따라 가산수당이 붙는다. 서울신문이 보도한 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7,111건이 인가됐다. 반도체 연구개발은 지난해 3월부터 한 번에 여섯 달까지 인가받을 수 있다. 그 뒤 들어온 신청 62건 가운데 여섯 달짜리는 4건이었다. 산업통상부 관계자는 "기업이 제출해야 할 서류가 10종 이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보도된 방안에는 가산수당이 빠져 있다. 인가 절차를 둘지는 정부가 답할 물음이다. 인가까지 두지 않는다면 본인의 동의가 사실상 하나뿐인 보호 장치가 될 수 있다.

셋째는 다른 나라가 붙인 조건이다. 일본에도 근로시간과 수당 규정을 함께 적용하지 않는 고도프로페셔널 제도가 있다. 후생노동성 안내에 따르면 연 1,075만 엔 이상을 받고 법이 정한 다섯 가지 업무를 맡는 사람이 대상이다. 노동자 쪽이 절반을 차지하는 사내 위원회에서 5분의 4 이상이 결의하고, 본인이 서면으로 동의해야 한다. 동의는 기간 중에 거둘 수 있고, 동의하지 않은 사람을 불리하게 대우할 수 없다. 한 해 104일 이상 쉬게 하지 않으면 제도가 무효가 된다. 올해 3월 말 이 제도를 쓰는 사람은 일본 전체에 1,420명이다. 그 가운데 연구개발 업무는 42명이다.

42명뿐인 까닭이 조건이 까다로워서만은 아니다. 일본 노동기준법은 신기술 연구개발 업무에 시간외노동 상한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다. 연구개발자는 이 제도를 쓰지 않아도 상한 밖에 있다. 일본은 근로시간 상한을 없애는 것과 수당까지 주지 않는 것을 따로 다뤘다. 수당까지 주지 않는 제도에는 위원회 결의와 동의를 물릴 권리 같은 조건을 여럿 붙였다. 대만 노동기준법은 연장근로를 한 달 46시간으로 묶는다. 예외를 두려면 정부가 지정한 직종에서 노사가 서면으로 약정하고, 당국에 신고해 확인을 받아야 한다. 두 나라 법 모두 본인 동의 하나에 맡기지 않았다.

조건을 따지기보다 예외부터 넓혀야 한다는 쪽의 논거도 있다. 이창용 전 한국은행 총재가 10월 6일 서울대 포럼에서 한 말이다. "화이트칼라를 블루칼라와 같은 방식으로 관리해서는 나라의 발전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와 한국은행 연구진은 주 52시간 상한을 둔 뒤 초과근로가 7.7% 줄었지만 생산성이 올랐다는 증거는 없다고 분석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10월 8일 실무회의에서 고소득·연구직의 예외를 요구했다. 반대쪽인 민주노총은 7월 31일 성명에서 계약 갱신을 앞둔 기간제 노동자를 예로 들며 "사용자의 요구를 거부할 자유가 얼마나 있는지" 물었다.

이러한 논거는 왜 예외가 필요한지를 설명하지만, 보호 장치를 두지 말아야 할 까닭은 설명하지 않는다. 한국은행 연구진도 조건을 함께 냈다. 원래 받기로 정해진 급여를 보전하고, 최소 연속 휴식시간과 휴가 사용 의무를 두자고 했다. 2025년 2월의 이재명 당시 대표도 동의가 왜곡되는 것을 막을 방법으로 과징금과 형사처벌, 노조의 무기명 비밀투표를 들었다. 고소득 전문직이 회사와 대등하게 협상할 수 있다면 동의를 물릴 권리는 쓸 일이 드물 것이다. 대등하지 않다면 원치 않을 때 동의를 물릴 권리가 있어야 한다. 어느 쪽이든 그 권리를 법에 적어 두어서 잃을 것은 없다.

노동부 국정감사는 10월 13일, 네 번째 실무회의는 14일로 잡혀 있다. 정부가 그 자리에 내놓을 것은 세 가지다. 첫째는 동의를 누구와 어떻게 하고 언제 거둘 수 있는지를 적은 조문이다. 둘째는 일반 수당의 계산 방식이다. 셋째는 장관이 9월에 말한 "축적됐던 실태조사"다. 정부 안에서는 상위 3%와 7%를 다툰다. 그보다 먼저 정할 것은 동의하지 않은 사람이 불이익을 받지 않게 하는 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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