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세종청사 11동 고용노동부 건물. 2014년 12월 촬영된 자료사진이다.
정부세종청사 11동 고용노동부 건물. 2014년 12월 촬영된 자료사진이다.
사진: Minseong Kim · Ministry of Employment & Labor (South Korea).JPG · CC BY-SA 4.0

한 시대를 이끌었던 세대가 그 시대의 장애물이 되는 순간이 온다. 대한민국의 86세대가 지금 그렇다.

1980년대 대학에 들어가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이들은 한국 현대사의 주역이었다. 권위주의에 맞서 싸웠고,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다. 그 공로를 부정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민주화에 기여했다는 사실이 영원한 권력의 자격증이 될 수는 없다. 과거의 공로가 오늘의 무능을 용서해 주지도 않는다.

86세대는 민주화 이후에도 대한민국의 정치와 사회를 오랫동안 지배했다. 학생운동의 지도자들은 국회의원이 되고 장관이 되고 권력의 핵심으로 진입했다. 언론과 학계, 문화계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저항하던 세대가 지배하는 세대가 된 것이다.

문제는 권력을 잡고도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는 점이다.

최근 민주당의 행태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국정감사가 끝나가는데 집권 여당이 내세운 주요 정치 현안은 조희대 대법원장 국정조사와 조작기소 특검이다. 야당 때도 탄핵과 특검이더니, 집권해서도 탄핵과 특검이다.

정권은 잡았지만 아직도 야당처럼 싸운다. 밖으로는 사법부와 싸우고, 안으로는 명청 전쟁을 벌인다.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고, 공격하고, 끌어내리는 일에는 능숙하다. 그러나 경제를 살리고 나라의 미래를 설계하는 일에는 무능하다.

1980년대 운동권의 투쟁 DNA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운동권 떨거지들이 여전히 권력 곳곳에 포진해 과거의 싸움을 되풀이하고 있다.

투쟁은 할 줄 알지만 통치는 할 줄 모른다. 이것이 86 운동권 정치의 비극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들이 이제 기득권의 수호자가 됐다는 사실이다.

한때 특권과 불평등에 맞서 싸웠던 세대가 스스로 특권층이 됐다. 노동자의 권리를 외치지만 정규직 대기업 노조의 기득권 앞에서는 침묵한다. 공정을 말하지만 자기편의 특권에는 관대하다. 개혁을 외치지만 자신들이 누리는 권력과 제도를 바꾸는 데는 인색하다.

청년들에게는 경쟁을 요구하면서 자신들은 안정된 일자리와 자산을 차지했다. 정년 연장에는 적극적이지만 그로 인해 청년들의 취업 기회가 어떻게 달라질지는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다.

물론 오늘의 주거난과 취업난을 모두 86세대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세대가 오랫동안 정치적 주도권을 행사했다면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

자신들은 민주화의 과실을 누리고, 다음 세대에는 저성장과 고용 불안, 비싼 집값과 국가부채를 물려주는 구조를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86세대의 세계관도 낡았다.

그들에게 정치는 오랫동안 민주 대 반민주, 진보 대 보수, 우리 편 대 적의 대결이었다. 그 구도가 유효했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이 직면한 문제는 다르다.

저출생과 고령화, 연금과 재정의 지속 가능성, 인공지능과 산업 재편, 일자리와 주거 문제는 과거의 투쟁 구호로 해결할 수 없다.

1980년대의 바리케이드 앞에서 통했던 정치가 2020년대의 반도체 공장과 인공지능 연구실에서도 통할 리 없다.

그런데도 이들은 자신들의 역사관과 도덕적 우월감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자신들이 정의의 편이라는 확신이 강할수록 다른 생각을 인정하는 데 인색해진다.

그 사이 대한민국의 세대 구도는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1980년대생은 IMF 외환위기 이후의 취업난과 치솟는 집값을 겪으며 성장했다. 1990년대생과 그 이후 세대는 저성장과 치열한 경쟁을 일상의 조건으로 받아들였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누가 민주화운동을 했느냐가 아니다. 누가 일자리를 만들고, 집을 마련할 기회를 넓히고, 공정한 경쟁의 규칙을 세우느냐다.

정치적 명분보다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정책을 요구한다. 기성세대가 내세우는 역사적 정당성보다 실제 성과를 따진다.

앞으로 대한민국의 가장 큰 갈등은 진보와 보수의 대립만이 아닐 것이다. 한정된 일자리와 주택, 연금과 복지 재원을 둘러싼 세대 간 이해관계의 충돌이 정치를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다.

정년을 늘리자는 기성세대와 취업문을 넓혀 달라는 청년 세대, 연금 수급을 보장받으려는 세대와 보험료 부담을 걱정하는 세대, 자산 가격의 안정을 원하는 세대와 내 집 마련의 기회를 원하는 세대가 충돌할 것이다.

물론 세대 내부에도 소득과 자산, 직업에 따른 차이가 크다. 세대 갈등이 모든 사회 갈등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세대별 이해관계가 정치적 선택을 좌우하는 힘은 앞으로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

이 변화 앞에서 86세대의 정치적 언어는 갈수록 설 자리를 잃을 것이다.

역사는 한 세대의 전유물이 아니다.

산업화 세대는 가난한 나라를 일으켜 세웠다. 민주화 세대는 권위주의를 무너뜨리고 민주주의를 발전시켰다. 두 세대 모두 대한민국에 큰 유산을 남겼다.

그러나 산업화의 공로가 영원한 지배를 보장하지 않았듯, 민주화의 공로도 마찬가지다.

86세대가 끝내 깨닫지 못하는 사실이 바로 이것이다.

자신들은 한때 낡은 질서를 무너뜨리는 진보의 주역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들이 만든 질서를 지키려는 보수적 기득권이 됐다.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기준은 과거에 어느 편에 섰느냐가 아니다. 지금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바꾸려 하느냐다.

낡은 질서를 지키는 세력이 수구다. 새로운 시대를 여는 세력이 진보다.

대한민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쳐 이제 세대교체의 시대로 향하고 있다.

86세대의 퇴장은 단순히 나이 든 정치인 몇 사람이 물러나는 문제가 아니다. 그들이 독점해 온 권력과 기회, 역사 해석의 주도권을 다음 세대에 넘기는 일이다. 동시에 다음 세대가 감당해야 할 부담을 공정하게 나누는 새로운 사회계약을 만드는 일이다.

그것이 앞으로 벌어질 세대전쟁의 본질이다.

86세대가 남긴 역사적 성취는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들의 정치적 지배까지 계속될 이유는 없다.

민주화를 이룬 세대가 민주화 이후의 대한민국까지 독점할 권리는 없다.

86세대는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날 때다. 그것이 자신들이 이룬 민주화의 가치를 지키는 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