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Jules* · Manifestation contre la réforme des retraites, Paris, le 28 mars 2023, 01.jpg · CC BY-SA 4.0
프랑스가 불타고 있다. 고물가와 연료비 상승에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교사 부족과 열악한 교육환경에 항의하던 학생들도 합류했다. 지난 17일 전국적으로 50만 명 넘는 시민이 시위에 참여했다. 일부는 차량에 불을 지르고 상점을 약탈했다. 시청과 공공시설도 공격받았다.
프랑스는 왜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당장의 원인은 생활고와 공공서비스 악화다. 그러나 그 밑에는 오랫동안 쌓인 재정 문제와 개혁 실패가 자리 잡고 있다.
프랑스의 공공지출은 국내총생산(GDP)의 57%에 달한다. 국가부채는 GDP의 115%를 넘어섰다. 연금과 복지에 막대한 돈을 쓰지만, 경제성장은 정체돼 있다.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0.7%에 불과하다.
정부는 돈을 많이 쓰는데 국민은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고 느낀다. 학교는 낡고 교사는 부족하다. 청년들은 미래를 걱정한다. 국가가 많은 돈을 쓴다는 사실과 국민이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는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프랑스 정부도 문제를 몰랐던 것은 아니다. 연금개혁을 추진했고 재정지출을 줄이려 했다. 그러나 개혁할 때마다 거센 저항에 부딪혔다. 정치권은 표를 잃을까 두려워 개혁을 미루거나 후퇴시켰다. 그사이 빚은 늘었고 이자 부담도 커졌다.
그렇다고 이번 사태를 과도한 복지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불평등과 청년들의 좌절, 정치에 대한 불신도 분노를 키웠다. 재정을 바로잡는다는 이유로 교육과 취약계층 지원부터 줄인다면 사회적 갈등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프랑스의 딜레마가 있다. 복지와 연금의 부담을 그대로 두면 국가재정이 흔들린다. 반대로 재정 건전성만 앞세워 서민의 삶을 외면하면 사회가 흔들린다.
우리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늙어가는 나라 가운데 하나다. 일할 사람은 줄고 연금과 의료, 돌봄에 들어갈 돈은 늘어난다. 경제성장마저 둔화하고 있다. 그런데 정치권은 선거 때마다 재원 대책이 불분명한 현금 지원과 복지 확대를 약속한다. 당장 표가 되는 정책에는 적극적이지만, 부담을 나누는 개혁에는 소극적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먼저 국가가 돈을 쓰는 방식부터 바꿔야 한다.
모든 국민에게 조금씩 나눠주는 것보다 도움이 절실한 사람을 제대로 보호하는 일이 중요하다. 효과가 불분명한 보조금과 선심성 사업은 줄이고, 빈곤층과 장애인, 어려운 노인의 안전망은 강화해야 한다. 교육과 의료처럼 국민의 기회를 좌우하는 공공서비스도 지켜야 한다.
연금개혁도 피할 수 없다. 기성세대가 누리는 혜택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청년들에게 보험료 부담만 떠넘길 수는 없다. 소득과 자산이 충분한 고령층도 부담을 나누고, 노후가 막막한 저소득층은 보호해야 한다. 지금의 혜택을 지키려고 미래세대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무엇보다 경제를 성장시켜야 한다. 성장 없는 복지 확대는 결국 세금과 빚에 의존하게 된다. 기업이 투자하고 일자리를 만들도록 규제를 개혁하고, 노동시장의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일회성 지원금만이 아니다. 일해서 소득을 얻고, 집을 마련하고, 더 나은 삶을 꿈꿀 수 있는 기회다.
물론 이런 개혁에는 저항이 따른다. 누군가는 지금까지 누리던 혜택을 양보해야 한다. 정치인들은 바로 그 일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개혁을 미루고, 국민에게 듣기 좋은 약속만 반복한다.
그러나 정치란 모든 사람에게 좋은 말만 하는 일이 아니다. 한정된 재원을 어디에 쓰고, 누가 얼마만큼 부담할지 결정하는 일이다. 국민에게 그 이유를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것이 정치의 책임이다.
프랑스 사태가 우리에게 던지는 경고는 분명하다.
재정 건전성은 복지의 적이 아니다. 지속 가능한 복지를 위한 조건이다. 성장 없는 분배도, 약자를 외면한 성장도 오래갈 수 없다.
국가가 모든 국민의 삶을 대신 책임질 수는 없다. 그러나 스스로 일어설 기회조차 얻지 못한 국민을 외면해서도 안 된다.
일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기회를,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보호를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그 비용을 미래세대에 무작정 떠넘겨서는 안 된다.
프랑스에서 배워야 할 것은 복지를 줄이라는 단순한 교훈이 아니다. 개혁을 미루면 결국 더 큰 대가를 치른다는 사실이다.
그 대가를 가장 먼저 치르는 사람은 대개 힘없는 서민과 미래를 준비하는 청년들이다.